[피플] <한국의 암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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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랭고타워 등반기 -- 주영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7-05-07 10:53     조회 : 8427    
트랭고타워 등반기 -- 주영
 
최후의 수단은 스카이후크 뿐이였다. 나는 스카이후크를 손에 들고 망설였다.

나의 아내가 첫애기를 낳던 날 나는 더 이상 스카이후크나 카퍼헤드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 결심은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도 지켜지지않았지만, 그간 내가 사용했던 스카이후크 동작은 Aз급 미만의 아주 안전한 동작이었다. 

지금 나는 스카이후크 동작이 A₄급이 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암벽의 표피층이 고산 특유의 풍화 작용으로 자꾸 부숴져  내린다는 사실도 명백히 깨닫고 있었다. 스카이후크를 이런 암질의 바위에 걸면 바위입자가 부숴지며 추락을 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A₄급에서 추락을 하게되면 최소한 다리 하나는 부러진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등반을 포기하고 후퇴하기에는 너무 억울하였다. 더구나 우리는 1차 공격에 이미 실패하였고 이번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 정상 공격이 아닌가? “아내여! 이 못난 남편을 용서하오” 나는 과감히 스카이후크에 올라섰다.

바위입자가 한톨 두톨부숴져 나가는 촉감이 오른 발 끝에 전해졌고 모든 신경촉감은 위험신호를 나의 두뇌에 전해주고 있었다. 스카이후크는 빠지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스카이후크 동작을 반복하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절망이었다.
 
왼발동작. 이 동작 역시 바위입자가 떨어져 나가며 나의 전신에 소름이 돋게 하였으나 빠지지는 않았다. ‘oh ! shit’ 욕설이 절로 나왔다. 더 이상 스카이후크를 설치할 암각이 없었다.

머리 위에 있는 작은 천정은 아직도 30센티미터 정도 위에 있었고 그 사이는 등반이 불가능한 벽이었다. 바위를 깨고 리퍼후크를 설치하기엔 암벽의 경사가 너무 가팔랐다. 왼발 뒤꿈치를 최대한으로 올려서 작은 천장에 피톤을 박으려고 시도해 보았으나 팔이 닿지 않았다.

“영이 형 ! 왼발이 재봉틀을 탑니다” 소호영 대원이 소리쳤다. 이 묘한 자세로 나의 왼발이 떨리고 있고 스카이후크는 빠질 듯이 흔들 거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절망이었다.

내 일생에 수십 번의 대 암벽등반을 했으나 이토록 철저하게 패배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등반을 떠나기 전 선우중옥 대장은 자랑스럽게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우리 대원들만큼 트랑고 등반에  적합한 이상적인 대원들을 뽑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말은 크리스 보닝턴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선우중옥 대장의 이 말이 귀에 쟁쟁하여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우리는 실패한 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무서운 기세로 하단 부 중단 부의 피치들을 올랐고 5.11급,5.12급의 어려운 피치도 가볍게 돌파하였다. 정상까지 단지 6피치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에서 생각 치도 않았던 이 5.9급 피치 (제24피치)에서 처절하게 물러서야 할 처지에 놓이고 말았던 것이다. 제22피치부터 크랙 속에 살얼음이 끼어서 나를 계속 곤경에 빠뜨렸지만 나는 그때마다 불여우 같은 잔재간으로 그 함정을 빠져나왔었다. 그런데...

살얼음이 살짝 덮인 상단부 크랙은 사실 암벽등반이 불가능하였고...
 8월초, 1주일간 계속된 폭설로 인하여 살얼음이 살짝 덮인 상단부 크랙은 사실 암벽등반이 불가능하였고, 얼음이 너무 얇아 빙벽등반도 불가능하였다.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였으나 사람이 못 올라가도록 조물주가 교묘하게 재주를 부린 듯 꼭 필요한 홀드와 스탠스에 살얼음이 얼어있었다.

이러한 피치들을 오르는 방법은 절묘한 등반기술을 발휘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이 24피치를 2~3일 후에 등반하였다면 5.9급 정도의 등반 밖에는 안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살얼음이 낀 지금 이 순간에는 초등을 한 유고등반대가 다시 와도 볼트 없이는 등반이 불가능할 상황이었다. 이 피치를 인공으로라도 오르려면 최소한 두 개의 대형 프랜드나 아니면 두 개의 아이스 후크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개의 대형프랜드가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등반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 트랑고 등반이 순수한 암벽등반인줄 착각을 하고 아이스 후크 하나 준비해오지 않았던 것이 잘못 이었다. 

날씨가 이상적인 기간동안에는 물론 순수한 암벽등반이겟지만 지금의 상단 부는 대부분의 등반대가 오른 것과는 전혀 다른 어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이 피치의 등반을 포기하고 밑의 테라스로 후퇴하였다. 철저한 실패였고 이제 집에 가는 일만이 남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5일간 벽도 만지지 말라” 
 7월12일, 파키스탄에 도착한 우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이곳에서 술을 구하기로한 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사방에 수소문하여 술을 어떻게 하면 구할까만 조사했고 마침내 오후4시경 우여곡절 끝에 술을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몰래 마시러 어느 여관방에 들어갔다. 그간 피로가 겹쳤는지 술을 마시다 쓰러져 버렸는데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 가물가물 하는 정신을 가다듬어 일어나 보니 세상에 이런 가관이 없었다. 선우중옥 대장을 위시한 전 대원이 인사불성이 되어 침대와 방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모두 흔들어 깨워 숙소로 돌아가려고 방을 나섰다. 제일먼저 방을 나선 선우중옥 대장이 비명을 지르며 방으로 뛰어 들어 왔다. “경찰이 포위했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우리는 기절초풍하였으나 알고 보니 이것은 대장의 장난이었다.

골치 아픈 머리를 쓰다듬으며 호텔로 돌아오니 서울에서 온 트랑고 원정대의 박 현규씨 일행 셋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반 퍼미션을 받지 못한 그들은 우리의 등반허가를 같이 쓰기를 요청했다. 대원들은 반대하였으나 “젊은 크라이머들은 한번 도와주자”며 선우중옥 대장은 대원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요청을 받아 들였다.
7월22일, 트랑고 타워 베이스 캠프(4.000m) 에 도착했다. 트랑고 타워 첫 관문은 전진캠프(5.200m) 까지 1.200미터 고도 차를 잘 극복하는 것이었다. 27일, 전진 캠프를 설치하기 전까지 우리는 고도순응을 겸하여 계속 전진캠프를 조금씩 이동했다. 후에 이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전진 캠프에서 벽은 불과 20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우리는 선우중옥 대장의 명령으로 며칠동안 벽은 만져 보지도 못했다. “5일간 고도순응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는 바위를 만지지 말라”는 대장 님의 엄명이 있었던 것이다.
 
29일에야 처음으로 트랑고 타워를 만져 볼 수...
 드디어 29일에야 처음으로 트랑고 타워를 만져볼수 있게 되었다. 등반대장인 ‘제이’(조 중환의 미국 이름)와  나는 하단 부의 여섯 피치에 고정자일을 설치할 목적으로 200미터의 고정자일을 끌고 몇 년을 벼르고 벼르던 md반을 시작하였다. 아침에 배낭을 꾸리는데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언뜻 눈에 제이의 암벽화가 보였다. “저 암벽화가 없어지면 오늘은 내가 모두 선등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나를 강렬하게 나를 유혹했고 거기에 생각이 미치기가 무섭게 나는 재빨리 암벽 화를 빼서 구석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시침이를 딱뗐다.

제이가 앞장을 서서 러셀을 하여 그레이트 트랑고타워(6.294m)와의 사이에 있는 콜(col)을 올랐다. 이곳에 오르니 둥게(Dunge)빙하가 내려다 보였다. 우리는 둥게 빙하 쪽으로 내려가서 등반을 시작했다.  “영이형 ! 내 암벽화 못 봤어?” “이 놈아 ! 네 암벽 화를 네가 어떻게 아냐? 자기 장비는 자기가 꾸려야지, 내가니 귀저기까지 갈아주랴?”나는 재빨리 자일을 묶고 선등을 시작했다. 이쯤 되면 나는 불여우 빰치는 구렁이다.

나는 지금까지 등반하면서 나보다 더한 불여우는 정호진이 밖에 못 봤다. 하프돔 등반때 그는 “톱을 교대할 만큼 테라스가 넓지 않다,” “주마링이 익숙치 않다”, “정상에 거의 다왔다” 등의 별의별 핑계를 대며 끝까지 톱을 양보 안 했었다. 그만큼은 내가 당할 수가 없다.
 
나는 속으로 걱정했다. 이 나이프 피톤은 끝만 살짝 박혀 있을 뿐이 었다.
 나는 휘파람을 불며 첫 피치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하단부가 쉬울 줄 알고 암벽화 대신 암벽화 창이 달린 운동화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첫 동작부터가 심각한 5.10급이 아닌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확보물의 설치마저 쉽지 않았다. 혹때려다 혹을 붙인 격으로 나는 운동화를 신고 결사적인 5.10급 동작을 해야 했다.

우린 1피치에서 길을 잃었다. 넓은 대슬랩에서 헤매다가 왼쪽 멀리에 있는 볼트를 발견하고 길을 찿았다. 1피치를 주마링 하던 제이가 투덜댔다. 내가 확보 물을 조금 설치해서 스타트 지점에서 10미터를 날랐다고 울상이었다. 내가 길게 좌측으로 트랩버스 한곳까지 와서 또 투덜댔다.

“영이 형! 자일을 이런 식으로 트래버스 시키면 위험해서 어떻게 주마링 해요”
“걱정마 이놈아! 프렌드가 두 개가 잘 들어갔으니까 아무 염려 없어”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프렌드 두 개가 모두 뽑아지며 제이가 10미터 밑으로 시계추처럼 또다시 추락했다.

2피치의 상단 부는 5.9급의 슬랩이었으나 물이 흐르고 있었고 확보 물이 전혀 없어서 마치 5.11급을 오르는 듯 심리적인 부담이 컸다. 빌레이 포인트는 두 개의 볼트가 엉성하게 박혀 있었다.

이 엉성한 볼트 두 개를 믿고는 주마링을 할 수 없다고 제이가 또 버텼다. 1피치에서 10미터씩 두 번을 추락하더니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도 장가를 가더니 이제는 제법 몸을 사릴 줄 알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더 이상의 확보 물을 설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형 피톤을 박는 척 하며 햄머질을 몇 번했다. “제이야! 이 피톤 잘 들어갔으니 걱정 말고 올라와”    “탱큐” ‘이런 순진한 놈이 있나.’나는 속으로 걱정했다. 이 나이프 피톤은 끝만 살짝 박혀 있을 뿐이 었다.
 
나는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제3피치에서는 나는 기절할뻔 했다. 트랑고 타워에서 5.11급 피치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우리는 무언가 트랑고 타워에 대해서 크게 착각을 하고 온 것이 분명했다. 내앞에 놓여있는 크랙은 아무리 보아도 5.11급이었다.

이때 나는 고도순응이 충분히 되어 있질 않아서 이 피치를 자유 등반할 능력이 없었다. 간단한 스카이후크 동작으로 크랙에 진입한 뒤 인공과 자유 등반을 섞어서 올랐다. 제이는 플라스틱 이중화를 신고 열심히 주마링을 하고 있는데 톱을 서고 싶은 욕구만으로 입이 석자나 나와 있었다.

제5피치를 오르던 나는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내앞에 20미터의 빙벽이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 트랑고는 순순한 암벽등반이라고 알려줬던 모든 이들이 원망스러웠다. 우리는 빙벽장비는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 하다못해 크램폰만 있어도 수월하게 오를 이 피치를 나는 온갖 괴상한 자세로 왼발은 암벽에,오른발은 빙벽에 딛고 간신히 오를 수 있었다.

암벽용 햄머로 스텝을 몇 개 깎고 올랐는데 운동화를 신고 그러한 빙벽을 올랐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위의 크랙을 쳐다본 나는 또한번 기절해야했다. 또 하나의 5.11급 크랙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6피치에 오르면서부터 등반이 쉬워지며 암벽의 반대편으로 우리의 전진 캠프가 보였다.

200미터의 고정자일을 내리니 전진캠프 코앞에 자일이 닿았다. 압자일 렌을 하니 두 발이 모두 공중에 뜨는 오버 행이 이었다. 전진캠프에 있던 소호영 대원과 조덕규 대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또다시 짐을 끌어올리느라 전 대원이 녹초가 되었다.
30일 오후에 눈이 와서 걱정을 하였는데 그런 대로 날이 좋았다.
200미터의 고정자일을 타고 짐을 홀링(Hauling:등반에 필요한 짐을 색에 넣어 끌어올리는 행위)하기로 하였는데 파트너 제이가 전날 위스키를 너무 많이 마셔셔 등반이 어렵게 되었다.

제이가 밑에 남고 나는 호소영,조덕규 대원과 200미터의 오버행벽을 주마링한뒤 200미터 자일로 열심히 짐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4명이 끌기로한 짐을 3명이서 끌어올리니 짐이 어찌나 무겁고 힘들게 올라오는지 2미터를 끌어올린 뒤 모두 쓰러졌으며 5분간 쉰 뒤 다시 2미터를 끌어올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우리의 고정자일과 홀링 자일이 오버행 에서 자주 엉켜 고역을 치렀지만 그럴 때마다 경험이 많은 호소영 대원이 침착하게 모두 해결했다. 홀링에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대 설원지대(5.500m)에까지 가질 못하고 제6피치 끝에서 포타렛지를 설치하고 비박을 했다.

다음날인 8월1일,우리는 벽의 1/3지점인 대 설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피 치의 슬 랩을 왼쪽으로 크게 돌아서 등반했는데 하루를 쉰 제이가 여유 있게 선등하여 끝냈다. 이어 또다시 짐을 끌어올리느라 전 대원이 녹초가 되었다.

홀링색 2개와 포타렛지1개,그리고 자일 400미터를 6.000미터 급에서 끌어올린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굉장한 중노동이었다. 대설 원에 캠프를 설치한 우리는 밤새 별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다 잠이 들었다.

트랑고 타워 암벽은 남동벽에서 불거져튀어 나온 부분인 대설 원을 경계로 크게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하단 부는 10피치 정도며 상단 부는 보통 20피치정도의 길이다. 이 상하 단을 합쳐서 총30피치 정도 된다. 대부분의 원정대는 이 대설원에 공격 캠프를 설치하고 상단을 등반하게 된다. 따라서 많을 때에는 2~3팀 이상의 원정대가 이곳 대설원에 한꺼번에 머무는 수도 있다.

고도순응이 제대로 안돼서인지 어려운 동작을 할 때마다 폐가 터질 듯이 숨이 차고 현기증이...
8월2일,나와 호소영 대원이 상단부 6피치에 고정자일을 설치하기 위해 등반을 시작했다. 이날우리는 200미터의 고정자일이 얼마나 무거운 짐인지 또한번 실감했다.

제 11피치는 비교적 쉬운 설 벽과 암벽이었는데 나는 설 벽을 오른 뒤 플라스틱 화를 벗고 암벽화로 갈아 신었다. 암벽은 비교적 쉬워서 5.6~5.7급 정도 밖에 안되었다.

제12피치의 천장(Roof)을 멋진 폼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양손이 확실하게 재밍이 잘되어 있는데도 이 오버행 위로 몸을 끌어당길 힘이 없었다. 고도순응이 제대로 안돼서인지 어려운 동작을 할 때마다 폐가 터질 듯이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나서 어지러웠다. 우리는 요세미테 스타일로 각 피치를 길게 끊기도 하였다.       

13~14피치를 한 피치로 올랐고,15~16피치도 55미터 자일을 사용하여 간신히 한 피치 올랐다.
16피치는 상당히 어려운 대형 크랙이었다. 최소한 5.11급,어쩌면 5.12급이 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대형크랙에 손발을 재밍하고 1분만 지나면 숨이 헐떡거렸으며 순식간에 팔이 펌핑이 되어 버렸다. 나는 힘이 빠지는 순간 대형 프렌드를 집어넣고 인공으로 오르다가 힘이 회복되면 자유등반을 하곤 했다. 한 동작이 자신이 없어서 스카이후크를 연달아 두 번 써서 해결했다. 고드름과 낙빙이 떨어지며 우리를 스쳐 지나 같다.

우리는 제16피치에 고정자일을 설치하고 이날등반을 마쳤으며 공격 캠프인 대설원으로 하강하였다.
3일,제이가 톱을 서서 호소영 대원과 함께 상당히 어려운 세 피치를 멋지게 돌파했다.
제17피치는 5.12급의 대형크랙으로 넓이가 20센티미터가 넘었기 때문에 확보물의 설치가 어려웠으나 제이가 재치 있게 올라 같다.

제19피치 역시 5.11~5.12급 정도로 보였는데 선 등을 하던 제이가 길을 잘못들 어서 온갖 고생 끝에 간신히 오를 수 있었다. 제이 역시 어려운 동작을 할 때마다 숨을 헐떡이고 서너 동작 할 때마다 숨을 헉헉댔다.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며 싸락눈이 쏟아지더니 곧 함박눈으로 변하여 펑펑...
 8월4일, 드디어 정상공격을 시작했다. 새벽3시에 일어나기로 했지만 미친척하고 눈을 감고 계속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중단 부를 올랐다. 일사천리로 쏜살같이 올랐으므로 오늘 중으로 잘만하면 비박없이 정상을 무난히 오를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꿈은 상단부에 도착하여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어찌된 일인지 상단 부의 크랙에 얼음이 여러 군데 끼어있어서 등반이 갑자기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제 22피치에서 길을 잘못들 어서 아주 고생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이 피치에서 흐르는 물에 하반신을 몽땅 적셨다.

이때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며 싸락눈이 쏟아지더니 곧 함박눈으로 변하여 펑펑 쏟아졌다. 정상까지는 겨우 200미터밖에 남아있지 않은 지점이었다. 내가 무슨 도사라고 함박눈이 쏟아지는 5.11급 크랙을 젖은 팬티를 입은 채 오를 수 있겠는가?

아깝지만 미련 없이 후퇴, 공격 캠프로 내려왔다. 이때부터 우리는 4박5일간 식량도 술도 거의 떨어진 상태에서 고생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눈이 내렸고 우리는 식량을 아끼느라 하루에 양송이 스프한개로 끼니를 때우고 텐트 속에서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8월7일, 날씨가 반짝 좋아졌다. 밑에서 한 등반대가 대설원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혹시나 한국등반대가 아닌가하고 반가운 마음에 바라보니 미국의 그렉차일드와 마크윌포드였다. 마크윌포드와 안면이 있는 터라 무척 반가웠다.
다시 이틀동안 눈이 펑펑 쏟아 졌다. 또다시 하루 한끼만 먹고, 견디다가 8월9일에 베이스 캠프로 하산했다.

8월11일, 다시 날씨가 좋아져서 우리는 최후의 공격을 해보기로 했다. 8월13일까지 등반을 못 끝내면 좋으나 싫으나 집으로 돌아가기로 우리끼리 약속되어 있었고, 8월14일엔 포터들이 우리 베이스 캠프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8시경에 베이스 캠프를 출발하여 5.500미터에 위치한 공격캠프로 향했다. 그간 허기진 배를 채우느라 하도 먹어댄 끝에 밤새도록 토해대던 조덕규도 질세라 죽자고 올라왔다.

우리는 오버 행에 설치된 300미터의 고정자일을 타고 공격캠프로 올라와서 일찍 잠을 청했으며 8월12일 무서운 기세로 등반을 하여 하루에 24피치까지 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 내게 볼트 3개만 내려주시면 앞으로 좋은 남편이 되고 성실한 아빠가 되겠습니다.”
 8월12일, 나는 제24피치 밑의 테라스에 주저앉자 한숨만 내뱉았다. 이곳까지와 후퇴하자니 너무 억울했다.
나는 우리 팀의 해결사인 소호영 대원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호영 대원은 마치 마법사 오즈처럼 우리가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그 문제를 해결해내었는데 나는 그에게 은근히 기대를 걸며 바라 봤다.

“하느님! 내게 볼트 3개만 내려주시면 앞으로 좋은 남편이 되고 성실한 아빠가 되겠습니다.” 대원들이 모두 가방을 뒤져봤지만 볼트가 나올 리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소호영 대원이 자신 있는 목소리로 소리 쳤다. “다시 뒤져봐. 분명히 볼트가 있을 거야.” 배낭을 모두 뒤져보고 홀색도 모두 털어 보았으나 볼트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때 홀색을 뒤지던 소대원이 다섯 개의 볼트를 찾아내었다. 이 볼트는 홀색속의 비밀포켓에 넣어져 있었던 것인데 홀색속에 비밀포켓이 달려있다는 사실은 소대원만이 알고 있었다.

나는 신이나 서 다시 용감하게 제24피치에 재도전했다. 이 볼트를 스카이후크가 빠지기 전에 설치하느라, 바위에 1센티미터 밖에 구멍을 뚫지 못했지만 나는 이 볼트가 충분히 내 체중을 견뎌 주리라고 믿었다.

다시는 되풀이 하고싶지 않은 위험한 인공등반동작을 되풀이하며 장시간을 매달려있던 나는 모두 3개의 볼트를 박고 이 피치를 오를수있었다.꿈같았다. 그러나 이 피치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낭비하여 그날 중으로 정상을 오르기는 이미 불가능하였다.

25피치를 마치고 나는 제이와 톱을 교대했다. 우모복을 껴입은 후 나는 제이가 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내일 오전 중으로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느님! 아까한 약속은 나도 모르게 급해서 한 것이고 가끔 시간 나면 가정에 충실하겠습니다.” 하고 다시 기도를 번복했다. 이 기도가 끝나기가 무섭게 ‘퍽’하는 소리와 함께 참외 만한 낙석이 내 팔을 때리고 지나갔다. 우모복에 구멍이 둟리고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24피치 밑의 테라스에 내려와 비박을 했다. 침낭 없이 침낭커버만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다. 이날 밤따라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몹시 추웠고 낙석에 맞은 팔이 쑤셨다.  13일, 온 대원이 달달 떨면서 잠을 못 잔 탓에 침낭 커버 속에서 해가 들어오는 7시까지 꼼짝 못했다. 우리가 달달 떠는 장면을 제이가 찍자 모두들 자라처럼 머리를 내 놓았다.
 
“정상에는 못 가도 좋으니 신 코스로 좋은 등반을 하도록 하여라”
 해가 들자 나는 상단 부의 ‘회색지대’를 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이 약속한 등반 마지막 날이었다.되든 안되든 오늘 중으로 등반을 끝내야했다.

회색지대는 경사가 상당히 가팔랐으며 오버 행 천정도 있었지만 홀드가 좋아서 의외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29피치의 작은 천정은 나에게 몹시 숨찬5.10급의 동작을 요구했다. 상단 부의 고도가 높아져 서인지 나는 서너 동작을 한 뒤 2~3분간 쉬면서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서너 동작 뒤에는 반드시 쉴 수 있는 스탠스가 나와서 그나마 나를 살려 주었다.각 동작은 5.9~5.10급 밖에 안되었으나 산소가 부족하여 생각처럼 올라지지가 않았다. 제이도 주마링을 하며 힘들어했고 소호영 대원도 비디오 카메라를 찍으며 힘들어했다.

12시30분에 나는 얼음이 꽁꽁 얼어있는 제30피치의 침니를 오른 뒤 마지막 암벽 피치를 끝낼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못해 남아돌았다. 내가 빙벽화로 갈아 신는 동안 빙벽의 대가인 소호영 대원이 정상까지의 짧은 설벽피치를 선등하여 정상설원에 섰다.

이곳에는 매년 적설량이 다른지 빌레이포인트가 3미터 간격으로 4군데 나 있었다. 실제 정상은 이곳에서 10미터 위에 있었으나 등반가치가 없고 또4명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다른 등반대들처럼 우리도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등반을 마치기로 했다. 전대원이 1시30분에 정상설원에 집합,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하였다.

정상에서 우리 4명은 비디오를 켜놓고 애국가를 불렀다. 그러나 너무나 목이 메어 제대로 부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정상을 정복한 감격 때문이 아니었다. 조국을 떠나 머나먼 미국에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등반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 감격스러워서 였다.

선우중옥 대장은 이 등반을 위해 막대한 사재를 털어 넣었으며 우리가 돈을 펑펑 쓰며 등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도 그는 우리가 등반을할때 “정상에는 못 가도 좋으니 신 코스로 좋은 등반을 하도록 하여라”하고 당부했다. 진정한 바위꾼이 아니고서야 그런 당부를 어떻게 하랴?

그래서 이 트랑고 등반은 등반을 한 4명뿐 아니라 산악인 선우중옥의 인간승리 였다. 그리고 모든 재미산악인의 승리였다고 생각한다.

등반 후기
트랑고 등반은 그 어려움이 카멜리온 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상단 부의 크랙 속에 얼음이 없다면 등반은 그리 어렵지 않고 전부 자유 등반이 가능하다. (5.12급)

그러나 상단 부에 살얼음이 끼어있다면 상당히 어렵고 위험한 등반이 된다. 트랑고에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동작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산소부족으로 5.10급만 되어도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게 되고 등반자세도 마음대로 나오질 않는다.

트랑고는 기술적으로 엘캐피탄 보다 쉽다고 한다. 그러나 고산에 위치한 관계로 엄청난 육체노동을 요구한다. 고도에 순응이 잘되면 비교적 등반이 수월해 지고 안되면 엄청나게 힘들 것이다.

트랑고의 등반길리로 타워는 모두 11.00미터로 하단부가 400미터, 상단부가 700미터 정도다. 그 사이에 넓은 테라스인 대설원이 있다.

등반의 가장큰 관건은 이 대설원에 설치한 공격캠프에 홀링으로 식량과 장비를 끌어올리는 것인데 이것이 실제등반보다 몇 배 힘이든다. 따라서 화려한 등반기술을 보유한 클라이머 보다는 빅월에서 자일조작에 익숙하고 막강한 체력을 소유하고 있는 노동자형(?)의 클라이머가 성공 확률이 높다.

하단과 중단 부의 5.11~5.12급 피치는 인공등반이 가능하여 그리 어렵지 않으나 상단 부의 크랙에 얼음이 낀다면 상당히 고차원 적인 인공등반기술이 요구되므로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오른 고유루트를 모두 자유등반으로 오르려면 최소한 3~4주의 고도순응을 마친 뒤라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단5일의 고도순응을 한 탓인지 상단 부의 크랙에서는 숨이 차서 몹시 고전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은 앨캐피탄도 하루에 등정이 되므로, 4주간의 완벽한 고도순응을 마친 뒤라면, 이 거대한 암벽도 단 하루에 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 단, 날씨가 좋았을 경우다. 따라서 트랑고타워 에서의 등반 성패는 날씨에 따른 상단부의 얼음 상태와 고도순응 여부에 달려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해설 : 히말라야 벽등반의 시험대 트랑고
 
남가주 한인 산악회가 등정한 트랑고 타워(6.239m)는 트랑고 탑군 가운데 가장 북쪽에 위치한 침봉이다.
6.000미터 이상의 멋진 화강암 침봉이 연이어 있는 트랑고 탑군은 발토로 빙하 상에서 수 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접근이 용이하며, 근접한 빠유(6.601m),울리비아호(6.083m)와 함께 일찍부터 미래의 등반대상지로 인식되어 오던 곳이었다.

대 여섯 개의 트랑고 침봉 가운데 특히 많은 등반대가 드는곳은 흔히 트랑고 네임리스 타워라 불리는 침봉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그레이트 트랑고타워(6.284m)에도 등반대의 발길이 잦다.

92년까지 트랑고 타워에 도전한 팀은 총15개 팀이며, 76년 초등루트를 비롯, 유고루트(87년),스위스-프랑스루트(87년), 쿠르티카 -로레탕루트(88년), 스페인루트(89년),독일의 귈리히 -알버트루트(89년), 일본의 미나미우라 단독루트(90년)등 서벽과 남벽,동벽에 총7개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트랑고타워 탑군에서는 최근들어 자유등반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히말라야 거벽등반의 시험대로 주목받고 있다.

이 지역에 가장 눈을 먼저 돌리고 등반을 시도한 사람은 영국의 조 부라 운이었다. 그는56년 무즈타그 타워 등반때 트랑고 탑군의 인상적인 모습을 보았으며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흐른 뒤인 76년 일행3명과 함께 남서 벽을 통해 정상에 섰다. 이미 74년과 75년의 공격이 실패로 끝난 뒤 이루어진 성공이었다.

초등이후 얼마동안 잊혀졌던 트랑고타워는 84년 프랑스와,86년 쿠르티카의 폴란드와 노보루 야마다가 이끄는 일본합동대에의해 남동벽이 시도되었다.

그들 가운데 일본 팀은 주벽 스노우레지(5.200m)로부터 등반을 시작했으나 단지 4피치를 끝내는 것으로 손들고 내려왔다. 이때 쿠쿠츠카는 “이런 수직 벽을 일본 팀과 같은 전술로 등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하여 쿠르티카는 철저한 연구 끝에 88년 스위스의 E.로레땅과 파트너를 이뤄 남동벽에 루트를 개척했다.

87년,트랑고 베이스 캠프는 여러 등반대들의 발길로 붐볐는데 이 시즌 남동벽(1,200m)과 서벽(1,250m)에 유고 팀과 스위스 팀의 루트가 개척되었다.

88년 쿠르티카 -로레땅 루트에 이어, 89년엔 스페인 4인조에 의해 남서벽 타이렉트 루트가 뚫렸으며, 서독의 W.귈리히와 K.알버트는 남동벽에 자유등반으로 새 루트를 냈다. (The Eternal Flame 루트로 명명)

그리고 90년 제프로우가 이끄는 미국 -프랑스 합동대가 남동벽 초등루트를 재등했으며 일본의 미나미우라는 단독으로 쿠르티카 -로레탕루트 오른쪽에 동벽 신루트를 개척했다.

이번 트랑고 타워에는 한국의 두팀 외에 미국팀, 호주 -소련합동대, 스페인, 스위스대가 등반을 했는데 박현규 씨 팀은 쿠르티카 -로레탕루트 5,700미터에서 후퇴했고, 그렉차일드의 미국 대는 유고코스 오른 쪽 크랙에 신 루트를 개척 중이었는데 남가주 산악회가 정상 가던 날, 벽 1/2오르고 있었다.

스페인 대는  7월22일 쿠르티카 - 로레탕루트를 완등하고 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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