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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윤세의 千山 行禪記
  글쓴이 : 김윤세     날짜 : 10-01-28 09:22     조회 : 8545    

김 윤세의 千山 行禪記

氷壁의 難關을 오르며 깨달은 것들

 

지금 우리들이 건너고 있는 ‘세월의 강(江)’은 경인(庚寅)년 설인 2월 14일이 되기 전까지는 기축(己丑) 년이므로 현재는 기축년의 막바지 고개를 넘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은 왜 겨울인가?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먹이 사슬의 일시적 공백기와 온천지가 얼어붙는 맹추위 속에서 ‘겨운 삶을 살아가는 시기’이므로 참으로 힘겨운 계절이라 할 수 있다.

 기축 년의 겨울은 유난히 많은 눈이 자주 내리고 강추위가 연일 계속됨으로써 가뜩이나 힘겨운 사람들에게 더욱 긴 인고(忍苦)의 시간을 갖게 한다. 아이티의 지진 참사로 인해 지구촌 전체가 예상치 못한 비극을 지켜보면서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는 생각에 연민의 정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각국에서 지원활동을 펴고 있음은 그나마 맹렬한 한파(寒波)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적 정(情)을 느끼게 한다.

기축 년의 동장군(冬將軍)이 이끄는 겨울나라 한파군(寒波軍)이 기습해올 때 따듯한 남쪽나라로 피신하거나 양지바른 햇볕을 찾아 이동하지 않고 그들과 맞서서 용감하게 싸우는 특수부대 전사(戰士)들이 있다.

 

위에서 아래도 내달리며 공격하는 설원(雪原)의 스키부대, 평평한 얼음 위로 쏜살같이 다니는 빙상(氷上)의 스케이트부대, 눈 덮인 산과 고개를 넘어 강행군하며 추위를 물리치는 겨울 산의 게릴라전 부대, 철옹성 같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바위벽과 얼음벽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탐구하고 더 높은 곳의 추위와 싸우며 그들의 성벽을 기어올라 넘어가는 고산(高山) 정복대와 암빙벽(岩氷壁) 부대 전사들이다.

 

특히 빙벽을 오르는 독특한 묘미에 이끌려 빙벽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안일무사(安逸無事)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자신의 내부에 자리 잡고 있는 ‘도전 본능’을 찾아내 극대화시키는 구도자(求道者)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특히 한파의 주력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설악산의 소승폭포, 토왕성 폭포, 춘천의 구곡폭포, 화천 딴산 빙장, 양구 용해소 빙장, 충북영동의 송천빙장,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 빙장 등 전국 각지의 빙벽을 찾아다니며 한파와의 전쟁을 이어가는 구도자적 빙벽전사들은 불굴의 도전정신과 그리벨, 페츨사의 아이스바일, 크램폰 등 세계 공인의 신무기들로 무장하고 나름대로 익힌 전술전략을 활용해 한랭(寒冷) 전선에서 한파의 선봉부대인 얼음의 벽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필자 역시 무자년 겨울(2008년12월~2009년 2월)에 빙벽등반을 시작해 10여 차례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한 이래 지난 2009년 12월 27일 강원도 양구 용해소 빙벽장 전투를 시작으로 두 번째 빙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소속부대는 한국의 빙벽전 사령부 예하 김 용기 등산학교 제 8기 빙벽반이다. 1월 3일 영동빙장, 10일 화천 딴산 빙장, 17일 영동 빙장, 24일 영월 한반도 빙장, 31일 설악산 소승폭포 빙벽으로 이어지는 한파군 빙벽과의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경인년 봄의 임금(東君)이 아지랑이 선발대를 앞세워 온갖 꽃들의 미소를 띠고 등장할 무렵 동장군의 기세가 수그러들면서 머리를 숙이고 방향을 돌려 등을 보이며 후퇴할 때에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따라 추격전을 펴지 않고 싸우면서 정든 친밀감 때문에 아쉬움속의 전송을 할 뿐이다. 말이 전쟁이지 얼음벽과 씨름을 하는 ‘친선 씨름대회’이기도 하고 또한 서로 어울려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얼음 잔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 겨울의 빙벽 전장(戰場)은 이러한 ‘아이스페스티벌’을 통해 따뜻한 방 아랫목 신세를 지지 않고 한파를 정면으로 맞이하고 얼음과 부대끼면서 그 차디찬 얼음과도 정들게 되는, 그래서 그 맹렬하던 동장군이 얼음부대원들을 이끌고 떠나는 것을 오랜 친구와의 이별처럼 서운해 하기도 하는 기이한 장면들이 연출되는 그런 전쟁터인 것이다. 좀 더 있어만 준다면 맛있는 막걸리나 프랑스 꼬냑이라도 아끼지 않고 내어다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생각조차 간절하다는 사실을 동장군과 그 군사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전국 각지의 명산들을 다니며 암벽등반을 하다가 10여 개월 만에 다시 빙벽등반에 나서자 그동안 굳은 몸과 마음으로 헉헉거리는 숨소리만 거칠어질 뿐 직벽 80여 m의 빙벽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거대한 철옹성으로 다가오며 저 성벽을 오를 일이 난감하게만 느껴진다. 나의 힘과 기량이 부족할 때 벽은 더욱 높고 험준해 보이는 법이다.

 

 양구 용해소에서의 1차전을 치르고 영동 송천빙장에서 제 2차전을 치르고도 경직된 몸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화천 딴산에서의 제3차전을 치르면서 조금 균형이 잡히고 영동의 제4차전에서 버벅거리면서라도 80여 m 최상단 부위에 오를 수 있었으며 영월 한반도 빙장의 제 5차전에서 비로소 어느 정도 발에 힘도 들어가고 약간의 요령을 터득해 힘을 덜 들이면서 목표지점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암벽등반, 빙벽등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강사진들의 지도와 그에 따른 반복훈련을 통해 조금씩 나아져가는 자신을 본다는 것은 만족감을 넘어 그 어떤 난관과 어려움도 극복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다는 차원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우선 넘어야 할 산과 고개, 벽 앞에 서서 “힘들 것이다, 불가능할 거야”라는 주저의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는 나약함을 떨치고 과감하게 도전하여 잠재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난관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는 활기찬 삶의 길을 걷는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높디높은 바위절벽과 까마득한 얼음의 벽을 올려다보면서 그 속에 길이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때 간절한 구도(求道)심으로 길을 찾고 과감한 도전정신으로 천 길 벼랑 끝에서 주저 없이 한 걸음 내딛음으로써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고 ‘새로운 자아(自我)’를 완성해가는 여정(旅程)에 들어섰음을 직감하게 된다.

 

 바위는 바위일 뿐이고 얼음은 얼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바위와 얼음을 내안의 바위벽이자 얼음벽이요, 넘어야 할 내 안의 산과 고개로 간주하고 언뜻 보면 결코 쉽게 파악되지 않는 ‘길 없는 길’을 찾아내 그 길을 통해 목표지점으로 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찌 생각하면 바보스럽고 무모해보이기까지 하는 그런 삶을 스스로 선택하여 목숨을 건 도전을 계속하는 고집쟁이들의 초인적 노력 덕분에 신(神)만 알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던 ‘불가능의 영역(領域)들’이 차츰 줄어들게 되었다.

 

 자연이 만든 높은 산과 벽을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만든 새로운 루트들은 뒤따라가는 이들에 의해 좀 더 넓혀지고 잘 정비된 통로가 되어 미지(未知)의 세계로 안내하는 훌륭한 이정표(里程標)가 되는 법이다.

 이 겨울, 얼음의 벽을 아이스 바일로 찍으며 오르다가 문득 머나먼 바다를 여행한 끝에 산골 본향(本鄕)으로 회귀(回歸)하는 여정에서 거대한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몸짓이 연상된다. 편안한 생활에 젖어 가만히 앉아서 별다른 노력 없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잉태시켜 세상에 나오게 한 ‘영성(靈性)의 본향’으로 찾아갈 수 있겠는가?

 

 깊은 산속에서 발원하여 제 본향인 바다를 향해 흐름을 이어가던 어느 계곡물이 동장군의 성화에 못 이겨 얼어붙은 빙벽을 거슬러 오르는 행위는 폭포로 내리 쏟아지는 수직의 물을 안고 씨름하는 것이요, 아이스 바일로 얼음을 찍는 것은 ‘칼로 물 베기’에 불과한 허망한 몸짓이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깊은 철학이 담긴 구도자들의 구도행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 행위의 의미와 가치가 어떻든 간에 머리 아픈 복잡한 얘기보다는 아무튼 빙벽등반은 보기보다, 생각보다 그리 위험한 것은 아니며 누구라도 노력만 하면 오묘한 맛에 이끌려 시간이 날 때마다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전국 각지의 빙벽장을 성지(聖地)처럼 순례하는 구도자로 바뀌게 될 것이다.


수직 절벽의 바위 몸에

백색의 얼음 옷을 휘감고 

俗人의 발길이 닿지 않는 철옹성 안에서

立禪 삼매에 든 허허로운 禪客


차디찬 얼음으로 俗塵을 씻고

혼신의 힘을 다해 높은 벽을 오르는

구도자들의 구도 행각은

어쩌다 내리비치는 햇살에 눈부시도록 빛난다


다른 이들이 부귀공명을 탐하든

아니면 명예와 안락을 추구하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길이 존재하니까 


다만, 얼음벽에 매달려

내 안의 높은 벽을 넘기 위해

얼음벽과 씨름을 하다가

이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인다


그러나 종내에는 싸우다가 정들어

서로 헤어질 무렵에는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는 연인들처럼

아쉬움에 자꾸만 뒤돌아보며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그들, 빙벽을 오르는 구도자들은 스스로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노자(老子)께서 도덕경(道德經)을 통해 강조한 바대로 ‘도의 속성에 가장 가까운(幾於道) 물의 덕성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가르침을 몸소 체득하기 위한 구도(求道) 행각을 이어가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국의 모든 빙벽장에서 빙벽등반을 즐기는 분들의 안전등반을 기원한다.

                                      <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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