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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세로또레 등반기 -- 주영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07-05-08 00:25     조회 : 9945    

'99 세로또레 등반기 -- 주영
 
"까마귀 노는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우리 어머니 께서 항상 내게 가르치시던 말씀이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이 말씀을 거역하는 일생 최대의 실수를(?) 고등학생이 되던 해인1970년에 저지르고 만다. 용산고등학교 산악부에 가입을 하고만 것이다.

학교에서 유명한 까마귀는 모조리 산악부에 모여있었고 여기에서 정호진이라는 정말 새까만 진짜 까마귀를 만나게 된다. 우리는 한주도 걸르지 않고 바위를 탔고, 중간고사 기간동안 (한주 동안 오전 시험만 보는 관계로)에도 오후에는 도서관 대신 선인봉으로 매일 직행하였다.

반에서 항상 10등 안에 들던 나의 성적은 바닥에서 10등을 넘지못하게 되었고 우리의 바위실력은 어머니의 한숨과 학교 등수를 합한만큼 나날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뒤 우리는 이별의 악수를 나누게 되었고 나는 요세미티에서 호진이는 연대 산악부에서 미친 까마귀 같은 산악활동을 계속하였다. 우리가 자일을 서로 묶은지 20년이 되던 1989년 호진이와 나는 꿈같은 일주일을 요세미티에서 보낼 수가 있었다.

당시 35살이던 우리는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엘캐피탄과 해프돔을 각각 12시간대에 돌파하였고 미들 캐시드럴을 2시간반만에 올랐다. 이 꿈같은 일주일을 우리는 잊을 수 가 없었다. 우리는 정말 미친듯이 올랐다.

그리고 10년이 또 흘렀다. 1999년은 우리가 자일파트너가 된지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45살이 되는 기쁘고도 슬픈해 이다. 우리가 더 늙기 전에 한번만 더 사고를(?) 치자는 정호진의 카사노바 같은 애절한 프로포즈를 거절할 수 있을만큼 나의 정조관념은 굳세지 못하였다.

"어머니! 이 늙은 백로를 용서해 주세요, 또 이 까마귀 녀석과 함께 떠납니다." 히말라야, 알프스, 맥킨리 등등 가볼데는 다 가봤다. 남은곳은 파타고니아.

쎄로또레를 쳐다 보기만 하여도 너무나 신이 나...
2월6일, 정호진이가 L.A. 공항에 도착하였고 나는 공항에서 합류하여 다음 비행기로 파타고니아로 향하였다. 비행기에 같이 탄 우리는 마치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 같은 심정이었고 우리의 마음은 3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아직도 15살인양 밤새 비행기에서 수다를 떨어댔다.

우리는 2주의 휴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려고 강행군을 하여 2월9일에 Cerro Torre의 Base Camp인 브리드웰 캠프에 도착 하였다. "좋다! 이제 열흘이나 남았다." 이 캠프장에 아주 새까만 젊은 한국 까마귀가 홀로 와있었다. 그 이름은 "문종국" 쎄로또레를 쏠로로 도전하러 광주에서 온 자랑스런 한국인 이다.

악천후로 1차공격에 실패하고 고생끝에 어제 하산하였다고 하는데 고생한 흔적이 얼굴에 가득히 적혀있었다. 우리는 무슨 인연인지 맥킨리, 요세미티 그리고 여기에서 우연히 세번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너무 장하고 대견하여 비상 식량으로(?) 간직한 비빔국수와 팩소주를 아낌없이 그와 함께 소비하였다.

2월10일, ABC격인 노르웨이 비박으로 출발하려고 하자 종국이가 가이드를 하겠다고 자청하며 우리 짐꾸러미를 뺐어맨다. 종국이는 우리가 길을 잃을까봐 걱정이 되어 파김치가 된 몸을 쉬게하지도 않고 앞장을 선다. 지방 산악회 사람들이 선후배 관계가 깎듯 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종국이를 보니 아직도 이런 후배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대견하다.

노르웨이 비박으로 향하다 거꾸로 케이블에 매달려 강을 티롤리안 트레버스로 건너기도 했다. 어찌나 길이 복잡한지 종국이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길도 찾지 못했을 것이라는 실감이 든다.

또레빙하에서 보이는 쎄로또레의 마이스트리 루트를 (일명:콤프레서 루트) 자세히 관찰해보니 중단에 구름이 끼어 있을뿐 별문제없이 1박2일에 등반을 끝낼 수 있으리란 자신이 든다 (이 구름이 얼마나 무서운 구름인지 우리는 이틀 후에 뼈 저리게 절감한다).

저 멋진 벽을 오르기 위해 우리는 30년을 기다렸다. 호진이와 나는 쎄로또레를 쳐다 보기만 하여도 너무나 신이 나서 입이 다물어 지지를 않는다.

"호지야! 저까짓꺼 잘하면 하루에도 가겠다" (호지는 호진이의 고등학교 시절 애칭이다.) "이 까짓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못 올라갔을까?" "맞아! 빨리해 치우고 칠레로 꽃게 먹으러 관광 가자" 이 순간에 쎄로또레는 "뭐라고! 이 미친 녀석들, 분해 죽겠네! 어서 빨리와서 한번 당해봐라!" 하고 벼르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바람이 나를 번쩍 들어서 오른쪽으로 1m 정도 집어 던져...
다음날 아침 우리는 스위스 팀을 따라서 쎄로또레의 하단부를 오르기 시작했다. 스위스에서 온 앤디는 파타고니아에서 여러코스를 초등한 실력자로 애인과 함께 올 씨즌 이벽을 두번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이번이 마지막 시도라고 한다.

이들은 무게를 아낄려고 침낭도 한 개만 가져왔다. 저런 미인과 한 침낭에서 비박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호진이도 눈동자가 야릇하게 굴러 다니는 것을 보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녀석은 어쩌면 나보다 더 고약한 상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자일을 짧게 묶고 호진이와 첫피치의 설벽을 연등 하고 있자니 너무 감계무량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다. 너무나 오래간 만에 해보는 알파인 등반이었고 우리 나이를 합하면 90살 인데 아직도 자일을 같이 묶고 이런 벽에 같이 붙어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뻣다.

호진이와 교대로 암벽과 믹스 지대를 다섯 피치 오르자 날씨가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했다. 호진이를 따라서 60M 빙벽을 절반쯤 올라 빙벽의 능선부분에 이르는 순간이었다.

"펑"하는 소리가 나면서 나의 몸이 붕 뜨는게 아닌가. 바람이 나를 번쩍 들어서 오른쪽으로 1m 정도 집어 던졌다. 본능적으로 아이스 햄머를 얼음에 재빨리 박아서 간신히 추락은 면했다. 믿어지지 않는 바람이었다. 호진이는 이 장면을 보지 못해서 내가 왜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고 기어 다니는지 이해를 못하고 "자식! 겁도 많네"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날씨는 계속 나빠져서 4시경에 7피치를 마치고 숄더에 올라서자 더 이상의 등반이 불가능 했다. 숄더의 끝부분에 거대한 설동이 파져 있었는데 입구가 모두 녹아 없어져서 호랑이가 아 가리를 벌린 모습을 하고있다. 이 설동은 너무 녹아 내려서 곧 무너질 것만 같아 불안 하였다.

몇 년 전에도 이설동이 무너져서 두명이 파뭍혔다가 옆에서 자던 등반대에게 간신히 구조되지 않았던가 ? "우리 먹을 저녁 다 준비 되었니 ?" 하고 내가 앤디 에게 설동을 들어서며 묻는다. 물론 농담이다. "물론 다 준비되었죠" 하고 앤디가 웃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펠을 내민다. 뜨거운 음료수이다.

우리는 금새 친해져서 웃고 떠드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앤디가 15일에 챨튼에서 여는 파티에 우리를 초청하며 날씨가 나쁘니 함께 하산을 하자고 한다. "우리는 시간이 일주일밖에 안 남아서 하산을 할 여유가 없어" 하고 대답하자, 행운을 빈다고 악수를 하고 그들은 하강을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공룡이 울부짖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바람은 밤새 불어대었고 우리는 추워서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바람이 파타고니아 등반의 가장 큰 장애물인 것이다.
 
"맞아! 바로 이거야" 꿈속의 암벽... 이제 30년간 고대하던 우리의 꿈이 이루어 진 것이다.
 추위에 잠을 설치다 새벽 두시에 문득 눈을 떠보니 바람도 그치고 하늘에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호지야! 정상에 가려면 지금 일어 나야해 !" 우리는 일어나기 싫어서 이리저리 늦장을 부리다 6시에 간신히 등반을 시작 하였다. 차디찬 바위에 반사되는 새벽 햇살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호진이가 먼저 열두 피치의 암벽지대를 선등하고 내가 13피치부터 시작되는 믹스지대를 맡기로 하였다. 정상까지는 아직도 28피치나 남아있었지만 우리는 하루에 갈 수 있다고 믿었다. 너무도 멋진 암벽등반 이었다.

호진이가 오르는 한 장면 장면이 환상 속의 포스터 사진 이었다. "맞아! 바로 이거야" 꿈속의 암벽, 바로 이것이 호진이와 내가 찾던것이다. 이제 30년간 고대하던 우리의 꿈이 이루어 진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게 10 피치를 오르자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호진이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심각한 말투로 더듬거린다. "여기에서 돌아서야 되겠지?" 물론 동감이다. 호진이가 도중에 내려가자고 하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닿는한 충실하게 최대한 높이 올라가고 위험이 닥치면 주저 없이 돌아서기로 약속을 했었다. 이약속은 우리 가족에게도 한 것이나 마찬가지 이었다. 이제 두피치만 더 올라가면 내가 선등을 할 차례인데 아쉬웠지만 살아서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서울을 떠난지 6일만에, 그리고 B.C설치후 3일만에 쎄로또레의 중간 부분인 여기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세계 신기록감 이었고 악천후로 인해 올 씨즌에 단 한팀만이 등정을 하였고 여기까지 올라온 팀도 거의 없었다. 우리는 정말 충실하게 열심히 올랐다.

이제 내려갈 수 있을 때 신속히 후퇴를 해야한다. 하강중 자일이 엉키면 조난이다. 자일이 잘 빠질것 같은 부분은 60m 하강을 하고 자일이 엉킬것 같은 부분은 자일 한동으로 30m 씩 하강하였다.

10여번의 하강 끝에 설동에 돌아왔다. 설동에서 요기를 하고 다시 하강을 계속 하려고 숄더로 나오니 바람이 더욱 세게 불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호지야 ! 하강이 너무 위험하다" "너무 추워서 나는 더 이상 비박을 할 수 없어, 내려 가야해" 눈보라는 사정없이 얼굴을 강타하여 아프기 이를데 없고 하강을 하여도 옆으로 몸이 날라갈 것 같다.

하강 포인트에 자일을 걸고 호진이가 줄을 던지려고 한다. 이 순간 고드름에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시체가 보이는 듯 하였다. 지금 하강하면 얼어 죽을 확률이 절반이다. 그러나 설동으로 대피하면 2 - 3일은 견딜 수 있다.

"호지야, 참자 !" 호진이가 깊은 한숨을 쉬고 돌아선다. 우리는 유령처럼 비틀거리며 설동으로 돌아왔다. 얼마나 눈보라가 시끄럽게 불어대는지 귀를 틀어 막고 싶었다. 과연 이 눈보라가 며칠이나 계속될지 불안하여 처음으로 침묵속에 부들부들 떨며 밤을 세웠다 밤새 불어대던 눈보라가 새벽녁에 거짓말 처럼 사라지고 해가 떠 올랐고, 우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하강을 시작했다.

어젯밤의 근심 걱정은 모두 잊어먹고 또다시 낄낄대고 하강하는 우리의 모습이 기가 막혔다. 우리는 베이스캠프로 돌아와서 작전회의를 한뒤 좀더 날씨가 좋은 피츠로이 산군으로 목표를 바꾸기로 하였다.
 
"도와 주세요" 비상상황 임을 짐작하고 뛰어나가니...
 2월16일, 베이스 캠프를 피츠로이 밑의 리오블랑코로 이동 시켰다. 호진이는 길을 걸으며 야생화로 꽃다발을 만들어서 예쁜 아가씨를 만날때 마다 그녀들의 고운 손에 쥐어 주었다. "임마, 늬 마누라한테 한번 그래봐라, 좋아서 뱀쑈라도 시키면 할꺼다"

2월17일, 또다시 엄청난 짐을 짊어지고 ABC인 꼴수페리오로 향하는 설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안자이렌을 10m길이로 묶고 마지막 설벽을 먼저 오르던 호진이가 갑자기 추락한다. 크램폰에 낀 스노우볼을 털지 않아서 추락한 것이다.

하나 뿐인 아이스 액스를 있는 힘을 다해서 설벽에 박은뒤 크램폰을 설벽에 힘껏 걷어 찬다. 그리고 왼팔 팔꿈치를 피크 위에 걸고 20m 후에 나를 끌어 내릴 충격이 대비한다.

온몸의 신경세포는 비상신호를 울리고 있고 내 머리속에는 맥킨리에서의 사고가 스쳐 지나간다. 바로 이렇게 고상돈 대장이 당한 것이 아닌가 ? 호진이와 나는 결국 같은날 죽을 팔자인가 ?

필사적으로 아이스액스를 휘두르며 추락하던 호진이가 내 바로 옆에서 정지하고 둘의 눈이 마주친다. "이 웬수야 !" (등반중 우리는 여러 번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손걸이는 벗겨지고 손가락 두개가 간신히 샤프트 끝에 걸려서 제동이 되었다. 하산시에는 내가 또 추락 하였으니 흉 볼것도 없었다.

꼴수페리오에 도착한뒤 허물어져가는 설동을 보수하여 보금자리를구몄는데 너무나 재미있고 멋있었어 밤새 낄낄대고 지냈다. 다음날도 비가 와서 모든 등반대가 철수하였고 우리와 아르헨티나 등반대 두명만 남았다. 오후부터 강풍이 불어대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오후 4시반경에 아르헨티나 등반대인 다비드가 우리설동 입구에서 비명을 지른다 "도와 주세요" 비상상황 임을 짐작하고 뛰어나가니 다비드의 파트너인 가디토가 발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눈위에 누워 있었다.

설동앞의 바위를 오르다가 무너지는 바위를 끌어안고 15M 깊이의 크레바스 속으로 떨어지며 바위에 발목이 으스러 진것이다. 설동으로 끌고들어 가서 상처를 보니 발목뼈는 완전히 바스러 졌고 손이 들어갈 만큼 큰 구멍이 두군데나 생겨서 속의 뼈와 사골이 다 보인다.

대학시절에 구급조치 자격증을 수료할 때 배운 구급조치법을 써야할 운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다비드에게 하산하여 헬기 구조를 요청하라고 부탁하자 쓰러져 있던 다비드가 "안돼 !" 하고 소리친다.

내국인은 헬기로 무료구조가 안되고, 헬기 구조비용이 너무 비싸서 자기 수입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적당히 내복으로 상처를 동여매고 다비드를 홀로 급히 내려보낸다. 내 머리속에 다비드가 강풍에 날려 추락하는 장면이 자꾸 연상 되지만 방법이 없었다.
 
"발을 잃어 바위를 못하게 되느니 차라리 죽게 내버려 주십시요."
 출혈이 너무 심해 지혈대를 조이려 하자 가디토가 완강히 거절한다. 지혈을 하면 발에 피가 안통해서 발을 절단 할지 모른다는 이유이다. "지혈을 안하면 너는 죽을 지도 몰라." "발을 잃어 바위를 못하게 되느니 차라리 죽게 내버려 주십시요." 이말을 나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고 하마터면 울음을 터 뜨릴번 하였다.

가디토는 암벽대회에서 3등을 한 최고수준의 까마귀 였고 호진이 아들보다 겨우4살이 많은 23세 였다. 가디토에게 자주 지혈대를 풀어 주겠다고 타일러서 지혈을 하였으나 그때뿐이고 지혈대만 풀면 다시 출혈이 시작하였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치료를 하였고 호진이는 옆에서 충실한 간호원 역할을 해 내었다. 호진이가 더운물을 끓여서 물병에 넣어 차가운 발가락을 뎊혀서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했다. 발을 높게 올리고 지혈을 해도 지혈이 제대로 안된다.

상태가 약간 호전되자 호진이가 밥을 먹자고 한다. 가디토를 끌고 내려 가려면 체력이 많이 소모 될 테니 지금 잘 먹어 두자고 한다. 좋은 생각이다. 호진이가 만든 저녁을 보니 사골탕이다. 가디토의 발목에서 사골이 다 기어 나왔는데 그 옆에서 사골탕 통조림을 끓이는 호진이 식욕도 보통은 아니다. 가디토가 잠이 들지 못하게 계속 말을 시키는데 " 무얼 드십니까?" 하고 묻기에 사실대로 말을 못하고 코리안 푸드라고 대답했다.

자정이 넘자 제일 먼저 호라시오가 약간의 붕대를 가지고 도착했다. 다비드가 무사히 내려간 것이다. 한 밤중에 이러한 강풍을 뚫고 이 빙벽을 쏠로로 올라올 만큼 이들의 우정이 깊은 것이다.

1시경에 알렉스가 약과 붕대를 가지고 도착 하였다. 그는 강풍 속에서 크램폰이 한짝 벗겨졌는데도 암벽지대로 강행군하여 올라온 것이다.

이제 의약품이 있으니 좀더 확실한 응급조치를 해야된다. 가디토의 발에 임시로 감았던 내의등을 가위로 잘라내고 다시 붕대로 감는다. 나는 집도하는 의사가 되었고 호진이와 호라시오가 간호원 역할을 충실이 하였다. 덜렁대는 발목을 배낭에서 뺀 알루미늄 프레임을 구부려서 부목을 대고 압박붕대를 감는다. 가디토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한다.

출혈도 거의 그쳐서 우리는 이제서야 안심하고 우리 설동으로 돌아왔다. 밤새 10명의 클라이머들이 가디토를 구조하러 강풍을 뚫고 올라오는 것을 보고 아르헨티나 클라이머들을 몹시 존경하게 되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클라이머 이자 사진작가인 하인스 자크도 파트너인 피터와 구조를 도우러 올라오다 피터가 강풍에 날려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우리는 물을 끓여서 사람들 에게 마시게 했는데 어느 물병의 물을 코펠에 넣고 끓이던 호진이가 내게 말한다. "이 바나의 화력이 얼마나 좋은지 물을 넣자 마자 끓는 것 좀 봐" "야! 정말 죽이는데" 정말 죽는줄 알았다. 호진이는 백색 휘발유를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불길이 코펠에서 치솟고 나는 우리도 병원에 입원 하는구나 하고 생각 하였다.

서로 비명을 질러 대다가 호진이가 뚜껑을 농구 하듯이 코펠을 향해 던지자 기적같이 골인이 되며 불이 꺼지고 우리는 멍하니 서로를 쳐다본다. " 이 웬수야 !" 가디토를 썰매에 싣고 빙벽을 내려간다. 어느 세월에 이산을 내려갈까 하고 생각하는데 헬기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환성을 지른다.

내국인은 헬기 구조를 안해 주지만 한국인 두명이 구조를 하고 있고 오스트리아인이 구조중 다리가 부러졌다는 뉴스가 여론의 압력이 되어 헬기를 띄운 것이다. 그들은 피터를 구조하러 왔다가 가디토 까지 구조를 하러 온 것이다. 파타고니아의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헬기가 여러 번 망설인 후 간신히 착륙하였는데 파이로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있었다.

순식간에 헬기는 떠나가고 우리는 모두 끌어 안고 환성을 질러 대었다. 나는 남몰래 눈물을 딲았고 호진이도 돌아서서 눈물을 딲고있다. 정상을 오른 것 보다 더한 희열 이었다.

 "당신들이 그 유명한 한국 사람이지요?"
이로인해 우리는 챨텐 마을의 영웅이 되었다. 모두가 우리를 알아 보기 때문에 예전같이 길바닥에다 함부로 소변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를 하자고 하고 술집에 가니 "당신들이 그 유명한 한국 사람이지요 ?" 하고 묻는다.

매년 열리는 카니발 이라는 마을 축제에 가니 DJ가 우리를 알아보고 음악에 맞추어 랩을 하라고 무대로 나를 끌고간다. 할수없이 술 취한 김에 마이크에 대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 하고 엉터리 노래를 불렀고 200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내 노래에 맞추어 신나게 엉덩이를 흔들어 대고 있다.

얼마나 마셔 대었는지 호진이는 혀가 꼬부라 졌고 마리아는 똑바로 걷지도 못한다. 이 구조를 계기로 아르헨티나 클라이머들과 친형제 처럼 친해 지게 되었고 가디토와 피터의 병실에서 신나게 떠들다 우리는 모두 쫒겨났다.

서로 끌어 안고 작별할 때, 꼭 다시 자기들을 보러 파타고니아로 오라고 몇번씩 끌어 안는다. 나는 이 구조를 계기로 아르헨티나 클라이머들이 얼마나 정이 깊고 인간성이 순수한지 느끼게 되었고 동시에 이곳에 생각지도 않게 많은 동생들이 생기게 되어 너무나 행복했다.

호진이와 나는 이번 파타고니아 등반을 계기로 그동안 잊고 살던 중요한 것을 다시 찾았고 우리의 깊은 우정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10년이 빨리 지나서 호진이와 또다시 멋진 등반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좋은 동반자가 되어준 호진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우리를 길러주시고 이번 원정을 후원해 주신 조대행 선배님께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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