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한국의 암벽>…
대한민국의 '흔한…

의령 신반리 암장
인수봉대보수사업
 
 
 
  도봉산 선인봉 허리길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5-01-30 09:22     조회 : 4662    

[산을 말한다 | 도봉산 선인봉 허리길 개척등반 (상)]
광활한 선인의 전면벽 가로지로는 멋진 바윗길
  • 글 사진 백인섭 산악인 요델산악회(월간산 연재)                      
자일 펜듈럼과 슬랩 등반으로 이어지는 3피치 루트
도봉산 선인봉 허리길 개요 및 등반루트

위치
선인봉 측면 & 전면  개척일시 1965년 5월 개척자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개척 동기 및 구상 선인의 허리를 휘감고 도는 하늘 길에 대한 갈망 그리고  발견. 진자형 뛰기 또는 진자형 슬랩 등반 기술 고안.

코스 개요  기존 바위코스들과는 달리 힘이 아닌 밸런스 능력과 코스 탐색 능력을 요하는 바윗길이다.

제1피치 선인봉 측면 기점~첫 크랙(볼트 2개). 스탠스 & 홀드 구간.
제2피치 첫 번째 크랙~전면 바위턱(볼트 1개). 진자형 뛰기 & 슬랩 등반 구간.
제3피치 전면 바위턱~전면 테라스. 진자형 슬랩 & 크랙 등반 구간.

	근접 빌레이를 위해서 선등자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세컨드(강길건) 그리고 진자형 슬랩 중인 선등자의 빌레이를 보기 위해서 줄은 라스트(조상규)에 의해서 팽팽하게 지그재그 형태로 당겨지고 있는 상태다.
▲ 근접 빌레이를 위해서 선등자의 동태를 살피고 있는 세컨드(강길건) 그리고 진자형 슬랩 중인 선등자의 빌레이를 보기 위해서 줄은 라스트(조상규)에 의해서 팽팽하게 지그재그 형태로 당겨지고 있는 상태다.
1965년 5월 화창한 주말 오후 나는 만장봉 하산 길에 측면 코스 밑을 지나 전면 쪽으로 접어들면서 늘 하던 대로 뒤돌아 선인의 수려한 자태에 심취해 있었다. 마침 오후 햇살을 받아 선인봉의 남서쪽 면 즉 전면과 서쪽 측면이 만나는 부분이 아주 또렷하고 해맑게 빛나고 있었다.

이때 문득 한 가닥의 새로운 등반선이 눈에 띄었다. 선인 측면 코스 시작점 바로 옆에서부터 선인의 허리를 휘감고 돌아 전면으로 거의 수평으로 뻗어 나간 희미한 등반선의 조각들, 절벽 중간쯤에 위와 아래가 끊긴 상태로 형성되어 있는 짧은 수직의 크랙 조각들, 비록 경사는 졌지만 그래도 균형 잡고 서 있을 수 있을 걸로 보이는 작은 테라스, 그리고 손이든 발이든 뭐든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바위면 조각들. 그것들은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하고 또한 불연속적이고 희미했지만 그것이 갑자기 하나의 등반선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무렵 나는 선인의 거대한 벽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 보면서 그걸 막연한 꿈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에 선인봉의 모든 암벽길이 바닥에서 봉우리를 향해 수직상승의 등반선을 이루고 있어 항상 등반은 마치 가파른 언덕을 오를 때처럼 중력에 반하는 힘든 운동을 해야 하고 더구나 대개는 바위틈으로 후비적거리면서 올라야 하기에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에 도취될 여지가 없었다.

도봉에 미쳐 혼신 다 바쳐 등반에 몰두하던 터

하지만 만약에 저 수려하고 광대한 선인봉 전면바위벽을 중간쯤 높이에서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그것도 바위틈에 끼어서 후비적거리지 않고 몸을 바위에 노출해야 하는 등반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늘의 다리가 되어 마치 평지를 걷는 것처럼 아주 여유롭고 편안하게 그리고 무엇보다 발아래 펼쳐지는 모든 경치까지도 즐길 수 있는 운치 있는 루트가 되리라 생각했다.

당시 나는 도봉산에 미쳐서 나의 혼신을 다 바쳐 암벽등반에 몰두하고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심지어는 겨울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까지도 일단 산에 가면 반드시 암벽등반을 쉼 없이 해내곤 했었다. 한겨울에도 암벽등반을 쉼 없이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내 손으로 개척한 선인봉의 낭만길과 양지길 덕분이었다. 그리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내 몸 속에 등반에 대한 내공이 쌓이게 되었고 또한 그동안 꿈이 내 깊은 속에서 충분하게 숙성되고 이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바로 닫혀 있었던 내 마음의 눈을 뜨게 한 것이리라 생각되었다.

선인 서측면이 전면으로 꺾이는 암벽에는 3개의 수직 크랙 비슷한 높이에서 서로 평행하게 수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한 개는 서측 면에 다른 두 개는 전면에 형성되어 있고 모두가 비슷한 높이에서 생겨나고 없어져 버린다. 그들 사이 간격은 첫 번째 것은 자일 반 길이 정도고 두 번째 것은  3~4m 정도였다. 그래서 그것들은 그동안 내 눈에는 등반입장에서 볼 때 아무 소용없는 마치 쓰레기 조각들처럼 보여 왔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들의 하단부에 하켄을 박고 그것을 기점으로 해서 진자형 뛰기 또는 슬랩으로 이동하면 두 크랙 사이 구간이 연결되면서 측면에서 전면으로의 수평 이동이 가능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었다.

	[산을 말한다 | 도봉산 선인봉 허리길 개척등반 (상)] 광활한 선인의 전면벽 가로지로는 멋진 바윗길
진자형 뛰기란 내가 어렸을 적에 심취했던 만화 ‘밀림의 왕자’에서 타잔이 나무에 걸린 넝쿨을 붙잡고 이동하는 진자형 운동으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비슷한 높이로 옮겨가는 것과 같은 기술로 줄에 기대어 몸을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어 그 진폭을 늘려가는 원리이다. 진자형 슬랩이란 줄에 매달려 뛰는 대신 줄에 기대면서 슬랩으로 비스듬하게 오르는 것으로 확보점보다 낮은 곳에서는 줄의 장력 중 수직 분이 위로 당겨주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아주 가파른 경사도 슬랩으로 오를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바로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과 장소에서 내 스스로 생각해낸 등반방식이었다(뒤에 안 일이지만 그런 등반방식이 서구에서도 고안되어 소위 ‘펜듈럼’이란 새로운 등반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거대한 선인봉 전면벽의 허리를 휘감고 도는 멋진 등반로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는 그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바로 그 근처에서 그 면들이 잘 보일 만한 커다란 나무를 골라 재빨리 위로 올라갔다. 보다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나무 위에 오르니 그 등반선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등반선은 의외로 밑에서 얼핏 볼 때보다 훨씬 더 가능한 것으로 다가왔다. 예상대로 각각의 크랙 하단부가 뚜렷했고 그 높이가 서로 비슷해서 진자형 뛰기나 슬랩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밑에서는 보지 못했던 전혀 예상외의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크게 그것에 대한 가능성을 확신시켜 주었다. 바로 3번째 크랙 하단부 바로 옆에 수평으로 형성되어 있는 작은 바위 턱이었다. 선인 전면의 서측 중단부쯤의 반반한 바위 면에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로 형성되어 있는 짧지만 아주 뚜렷한 바위 턱이었다. 그 턱 주변에는 크랙이 전혀 없어 확보하켄을 설치할 수가 없을 걸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그 턱까지 갈 수만 있다면 그 위에 서서 내가 고안해서 만든 비장의 무기인 볼트 1개를 박는 작업이 충분히 가능할 걸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그 볼트에 의지하면서 또 다른 진자형 뛰기나 슬랩 등반을 하면 그 높이로 미루어 볼 때 전면 테라스에서 아래로 10여 m 깊게 패인 멋진 칼자국 크랙의 끝자락으로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생 바위에 박을 수 있는 볼트하켄 고안해내

당시 나는 암벽등반 중 확보하켄 설치가 불가능한 비상상황에 대한 대비책에 골몰하던 중 한 가지 비상수단을 고안해 내어 그 장비를 내 손으로 제작해서 가지고 있었다. 바로 생 바위에 구멍을 뚫어 볼트를 박아 확보하는 소위 볼트였다. 생 바위에 구멍을 뚫기 위해서 사용한 장비는 바로 공사장에서 콘크리트 벽에 직경 1cm 이내 깊이 3~4cm 정도의 구멍을 뚫는 조그만 정이었다. 화강암 바위가 콘크리트보다 강해서 깊이 2~3cm 구멍을 뚫기 위해서 정을 2~3개를 사용해야 했고 구멍 뚫는 데에만 대충 30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아주 비상시에만 사용할 장비였다. 그리고 구멍에 박을 것은 시중 철물점에 널려 있는 일반 볼트(직경 5~6mm 길이 5~6cm)였다. 볼트의 끝을 쇠톱으로 잘라서 쐐기를 끼워서 구멍 속에 때려 박을 때 볼트 끝 부분이 부풀어서 구멍에 압착되도록 했고 머리 부분에는 쇠사슬 고리를 2개씩 잘라서 끼워 넣어 카라비너를 걸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그 바위 턱으로의 접근이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본 불연속적 등반선 조각들을 어떻게 이어 붙일것인가의 문제였다. 우선 크게 보면 3개의 수평 크랙의 하단부를 확보점으로 하는 두세 번의 진자형 뛰기와 슬랩이 그 해답의 근간이다. 그러나 그 세 지점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가장 난감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만 했다. 첫째는 측면에서 어떻게 전면벽으로 올라서는 가였고 둘째는 전면벽 허리를 어떻게 가로질러 바위 턱까지 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제1 피치에서 경사진 테라스로 오르는 과정 스케치(당시 나의 등반노트).
▲ 제1 피치에서 경사진 테라스로 오르는 과정 스케치(당시 나의 등반노트).
곰곰히 생각하면서 다시 관찰해 보니 문제의 해답이 바로 거기에 숨겨져 있었다. 첫 번째 문제의 해답은 측면과 전면이 만나는 각도였다. 만약 그 두 면이 수직 각도로 만난다면 측면에 있는 첫 번째 크랙 하단부를 기점으로 하는 진자형 뛰기나 슬랩으로 전면으로 올라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적당한 지점에서 두 면이 직각이 아니라 훨씬 둔각으로 만나기 때문에 발바닥의 마찰력을 이용하는 진자형 슬랩 등반이 가능해 보이는 곳을 찾아낸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의 해답은 진자형 슬랩 등반으로 전면으로 넘어서면 바로 그 위치에 비록 깊지는 않지만 발로 디딜 수 있을 정도로 길게 수평으로 형성되어 있는 크랙형 밴드였다. 그것은 측면에서는 물론 전면에서도 쉽게 보이지 않는 시각적 사각지대에 숨겨져 있어 그동안 보지 못하고 있다가 바로 나무 위에 올라서서 발견해낸 것이다.

그 밴드는 길게 수평으로 뻗으면서 두 번째 수직 크랙 하단부(두 번째 진자형 슬랩 기점)로 이어지며 마침 그 지점에 사람 한 명 몸무게 정도는 지탱해 줄 것 같은 커다란 이끼덩이가 매달려 있었다. 그 이끼덩이를 딛고 서서 크랙 끝에 앵글하켄 하나 치고 그것에 의지하면서 두 번째 진자형 뛰기나 슬랩으로 문제의 바위턱으로 올라설 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면 그 턱에 서서  볼트 1개를 치고 그것에 의지하면서 세 번째 진자형 뛰기나 슬랩으로 전면 중앙부의 칼자국 크랙으로 파고들면 선인봉 전면을 높게 가로지르는 허리길이 완성되는 것이다.

남은 문제는 어디서 출발해서 어떻게 첫 번째 크랙 하단부로 접근할 것인가였다. 그 부분을 자세히 관찰해보기 위해서 나무에서 내려와 측면코스 출발점 쪽으로 자리를 옮겨 세밀하게 관찰해 보니 다행히도 첫 번째 크랙 하단부에 약간 비스듬하게 경사는 졌지만 그래도 발로만 균형 잡고 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테라스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진자형 뛰기를 위한 확보점으로서의 하켄 설치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측면 코스 출발점에서 전면 방향으로 수직벽에 얇은 바위 턱이 바로 그 테라스 아래까지 수평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그 위의 바위면 경사가 다소 불룩하지만 그래도 수직까지는 아니어서 몸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발로만 그 턱을 타고 끝까지 전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턱의 끝 지점과 테라스 사이는 수직벽으로 내 키 정도의 거리이고 중간에 짧고 얕은 크랙이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최선의 경우 손을 최대한 위로 뻗어 잡은 홀드가 좋으면 그대로 내 몸을 끌어 올려 단번에 테라스 위로 올라설 수가 있을 터이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는 짧고 작은 크랙에 하켄 하나 박고 사다리를 걸면 테라스로 올라설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비상수단으로서 만든 볼트 딱 한 개와 하켄 서너 개 정도를 사용하면서 대충 3번의 진자형 뛰기나 슬랩으로 광활한 선인 전면을 가로지르는 멋진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가 고안해서 내 손으로 만든 볼트하켄.
▲ 내가 고안해서 내 손으로 만든 볼트하켄.
결정, 행동, 좌절, 절망의 순간에 나타난 신의 손길

마침 일찌감치 바위를 끝내고 내려오는 터라 아직 해가 지려면 서너 시간은 남아 있었고 대원도 마침 정예 삼총사인 나와 강길건 그리고 조상규가 있었고 모두는 힘과 패기가 넘치는 상태였기 때문에 즉각 개척 작업에 착수했다. 행동에 앞서 전체적 구상을 구체화해서 대원에게 설명해 주었다.

측면 코스 출발점에서 우측으로 수평하게 형성되어 있는 좁은 밴드를 타면서 4m 정도 트래버스하면 계란 바위 밑쪽에 형성된 비스듬한 테라스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고, 거기서 손을 위로 최대한 뻗어 테라스의 끝자락에 형성되어 있는 턱을 잡고 몸을 끌어 올리면 테라스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고, 테라스 상단에 형성된 크랙에 첫 번째 진자의 중심점이 될 확보하켄을 설치하면 첫 피치가 완료된다. 거기서 세컨드의 근접 빌레이를 받으면서 4~5m 내려가서 줄을 고정하고 줄에 의지하면서 두 발과 두 손을 모두 사용하는 진자식 뛰기 또는 슬랩 등반을 하여 측면과 전면이 만나는 모서리를 타고 넘어선다. 거기서는 바로 한 발 아래 숨겨져 있는  수평밴드를 발판으로 하여 6~7m 정도 트래버스하면 이끼덩이에 닿는다. 그 이끼덩이는 사람 한 명의 몸무게 정도는 충격만 주지 않는 한 버텨낼 것이다. 따라서 그 위에 올라서서 크랙에 앵글하켄을 한 개 설치하고 세컨드가 그리로 오면 나는 다시 근접 빌레이를 받으면서 진자형 뛰기나 슬랩 등반을 해서 결정적인 그 바위 턱에 올라서면 제 2피치가 완료된다.

거기에 볼트 한 개를 박고 다시 세컨드의 근접 빌레이를 받으면서 다시 진자형 뛰기나 슬랩 등반으로 트래버스해 전면 박쥐 테라스에서 밑으로 뻗쳐 있는 칼 크랙의 하단으로 파고들어 그것을 타고 올라 테라스에 도달하면 마지막 제3피치가 끝나는 것이다.
우리 삼총사만으로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세 군데에 앵글하켄을 박아야 하고 볼트는 바위 턱에 한 개만 박으면 된다. 나는 장비를 점검했다. 자일 2동과 각종 하켄은 충분히 있었고 볼트는 3개나 있었고 줄사다리도 두 벌, 해머는 2개, 카라비너는 충분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였다. 내가 선등을 했고 세컨드는 강길건, 라스트는 조상규였다.

바로 행동에 옮겼다. 제1피치는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다. 다만 1피치에서 예상 밖으로 예비용 볼트 두 개를 모두 소모했다. 하나는 출발점의 밴드 끝에서 문제의 작고 비스듬한 테라스에 내 손이 닿지 않았고 또한 얇은 크랙들이 막혀 있어 리스하켄조차 전진용으로 살짝 박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볼트를 사용했다. 다른 한 개는 그 작고 경사진 테라스 위에 올라서서 그 가장자리에 형성되어 있는 크랙의 상단부에 앵글하켄을 튼튼하게 쳐서 첫 번째 진자형 슬랩의 거점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막힌 크랙이라 하켄이 먹히질 않아 할 수 없이 테라스 면 상부에 볼트를 박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볼트는 잠깐의 전진용이라서 얕게 박았고 두 번째 것은 진자형 뛰기나 슬랩의 거점이기에 깊게 확실하게 박았다.

이제 남은 볼트는 단 하나뿐. 따라서 제2피치와 3피치에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아직 볼트 한 개는 남아 있으니 일단 첫 번째 난관인 전면으로의 진자형 슬랩 트래버스를 시도해 보기로 작정했다.

	첫 번째 진자형 뛰기와 진자형 슬랩 트래버스 스케치 (당시 나의 등반노트에서).
▲ 첫 번째 진자형 뛰기와 진자형 슬랩 트래버스 스케치 (당시 나의 등반노트에서).
그러기 위해서는 세컨드가 올라와서 근접 빌레이를 보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전면으로 넘어선 후 여의치 않아 추락할 경우 매우 큰 충격을 받아내야 하기에 불안정한 테라스보다는 아예 출발점에서 빌레이를 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확보자의 막힌 시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세컨드가 별도로 적절한 위치까지 전진해서 선등자의 동작을 세밀하게 살펴서 라스트 확보자에게 줄을 당겨라 고정해라 늦추어라 하는 제어를 하도록 조처한 후 나는 두 번째 볼트에 줄을 걸고 빌레이를 받으며 3~4m 아래로 비스듬하게 내려서서 사실상 세컨드와 라스트 두 명의 근접  빌레이를 받으면서 진자형 뛰기와 슬랩 트래버스를 시도했다.

몇 차례 실패를 통해서 나의 등반궤적을 수정한 후 드디어 전면과 측면의 모서리 부분에 나의 오른손이 닿았다. 그 순간 나는 재빠르게 줄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고 줄에 기대면서 두 손으로 바위 면을 찍어 누르면서 나의 몸을 끌어올려 전면으로 올라섰다. 그 순간에 고정되어 있던 나의 확보 줄이 때맞추어 늦춰졌음은 물론이다. 이런 식의 예민한 등반에서는 물론 선등자의 등반력이 절대 중요하지만 고정했던 줄을 때맞추어 적절하게 늦추어야 하기 때문에 근접 빌레이가 필수조건이 된다.

전면으로 올라서자 예상대로 바로 내 발이 닿는 거리에 크랙형 밴드가 수평으로 쭉 뻗어 있었다. 나는 한 발 내려서서 그걸 타고 무난하게 전진해서 그 끝에 형성되어 있는 이끼덩이 위에 올라섰다. 그 이끼덩이는 예상대로 내 몸무게를 지탱해 주었다. 이로써 당초 예상했던 두 가지 난관 즉 측면에서 전면으로의 이동 그리고 전면에서 두 번째 크랙까지의 수평 이동이 모두 예상대로 돌파된 것이다. 나는 그 이끼덩이 위에 편하게 서서 하켄 박는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근접 빌레이  보통은 진자형 뛰기나 슬랩 등반을 할 때 줄을 고정하고 두 손 또는 한 손으로 줄을 잡고 발로만 오른다. 그러나 올라야 할 바위 면이 가파르고 까다로운 경우엔 두 발은 물론 두 손까지 모두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으로 줄을 잡지 않고 몸으로 줄에 기대면서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사용하면서 올라야 한다.

그럴 경우 확보자는 줄에 의지하면서 오르는 선등자의 등반을 원활하게 해주기 위해서 아주 예민하게 빌레이를 보아주어야 한다. 선등자가 기댈 수 있도록 때맞춰 줄을 고정해 주어야 하고 그리고 동시에 전진할 수 있도록 때맞춰 줄을 필요한 만큼만 늦춰 주어야 한다. 줄을 너무 늦춰 주면 선등자가 균형을 잃고 슬립할 수가 있고 너무 고정해 주면 선등자가 전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필요한 행동이 때맞추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확보자는 선등자에 아주 근접해서 선등자의 몸동작을 예민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근접 빌레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지는 것이다.

필자소개 산악인(요델산악회)

학력경력 서울 출생, 경복고, 서울대 공대(전기공학), 한국과학기술연구소(선임연구원), 카이스트(전산학 석사), 프랑스 IMAG(전산학 박사), 데이콤(초대연구소장), 아주대 정보통신대(교수).

등반경력 개척초등 등반(도봉산 : 양지길, 허리길, 표범길 등.

설악산 : 범봉, 석주길, 칠형제봉, 자즌바위골 등)

등반외 취미활동 스키, 테니스, 윈드서핑 등

코멘트입력

게시물 121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한국의암벽 절판!, 할인판매!! 운영자 03-27 14796
암벽 개념도와 자료, 저작권에 대한 안내문!!(필독) 운영자 10-18 21606
121 의령 신반리 암장 운영자 05-23 8732
120 인수봉대보수사업 운영자 08-31 12783
119 인수봉 대보수사업의 과정 (2) 운영자 08-31 9080
118 인수봉 거룡길 운영자 06-29 5792
117 인수봉 빌라길 운영자 06-09 6177
116 인수봉 하늘길 운영자 05-03 5706
115 설악산 자연빙폭 운영자 03-03 6447
114 북한산 인수봉 심우길 운영자 01-26 7842
113 도봉산 선인봉 연대베첼로 운영자 01-07 5056
112 선인봉 요델버트레스 운영자 12-02 7021
111 '한국의암벽' 절판!!, 일부 할인판매!! 운영자 11-11 6296
110 도봉산 선인봉 하늘길 운영자 10-21 7065
109 선인봉 표범길 운영자 10-08 6188
108 요세미티 엘캡 이스트버트레스 운영자 09-18 6033
107 선인봉 표범길 개척 운영자 09-14 6240
106 도봉산 선인봉 박쥐길 운영자 08-31 6205
105 인수봉 학교길 운영자 08-14 6933
104 전남 화순 하늘바위 운영자 08-10 6538
103 부산 암남공원 해벽 운영자 07-28 6774
102 삼성산 일봉암장 '농부의아들'(5.12c) 운영자 07-06 7150
101 대구 연경동 암장 운영자 07-01 5365
100 암벽ㅣ울산 문수산 병풍바위 운영자 05-27 7283
99 북한산 노적봉의 새 루트들 운영자 04-01 9170
98 한국의암벽 절판!, 할인판매!! 운영자 03-27 14796
97 이 한 장의 사진 | 김용기등산학교 김용기 교장 운영자 03-02 5109
96 남한산성 범굴암 운영자 03-02 5128
95 김윤세 인산가 회장의 '암벽 등반' 운영자 02-11 4788
94 도봉산 선인봉 허리길 운영자 01-30 4663
93 삼성산 부활 & 파워암장 운영자 01-30 6655
92 설악산 4개 암장 폐쇄 조치 ,,, 운영자 01-06 4964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