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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인봉 표범길 개척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5-09-14 08:38     조회 : 6295    

[산을 말한다 | 선인봉 표범길 개척 <상>]
불연속선이 끝나는 지점에는 돌파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 글·사진 백인섭 산악인 요델산악회             
도봉산 선인봉 전면 다섯 피치짜리 고전루트 개척
하늘과 땅 사이를 잇는 바위절벽에 심취되어 바위에 매달려 살기를 수 년. 1963년 선인봉 낭만길, 1964년 선인봉 서측에 양지길, 그리고 1965년 선인봉 측면에서 전면으로 선인의 허리를 휘감고 도는 허리길을 개척한 다음해인 1966년 나는 선인봉 전면 박쥐코스와 측면 사이의 텅 빈 공간에 마음을 쏟기 시작했다.

박쥐코스는 거대한 선인 전면 벽을 한가운데쯤에서 바닥으로부터 봉우리를 향해 거의 수직으로 이어지는 등반선으로, 선인 전면을 동쪽 면과 서쪽 면으로 나누고 있다. 동쪽 면에는 밑에서 위로 세 개의 골이 수직 상승하고 있으며, 각각이 바로 기존의 등반 코스를 이루고 있다. 전면A, 전면B 그리고 전면C 코스다. 그러나 서쪽 면은 거대한 선인 전면의 반을 차지하는 광활한 벽이지만 텅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동측 면처럼 밑에서 위로 연속적으로 형성된 골이나 크랙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표범길 등반.
▲ 표범길 등반.
‘가능성 모색’ 소망과 탐색 그리고 예감과 확인

그래서 샘터에서 선인봉 전면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속에 아쉬움을 느끼곤 했다. 더구나 그 텅 빈 광활한 공간 속에는 아주 멋진 두 개의 등반선이 언제나 나를 매혹하고 있어 안타까움은 더했다.

첫째 선은 선인 전면 벽의 하단 중앙 부위를 덮어씌우고 있는 거대한 덮개바위, 그것의 왼쪽 아래에 형성되어 있는 멋진 언더홀드 선이다. 그것의 오른쪽 끝자락 선은 박쥐코스의 언더홀드가 되어 멋진 등로를 이루고 있지만, 왼쪽 아래 끝자락 선은 더욱 멋진 선의 언더홀드 감임에도 위아래가 끊겨 등로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둘째 선은 선인 전면 테라스에서 밑으로 7시 방향으로 형성되어 있는 멋진 크랙이다. 그것은 대충 20m 길이로 깨끗하고 뚜렷하게 패여 있어 마치 옛날 검객의 얼굴에 깊게 패인 칼자국 상처처럼 보였다.

이 둘을 어떻게 등로로 만들어 이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그 가능성이 비록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가능할 것 같은 등반로를 대충 구상해 보았다.

제1피치는 박쥐코스 1피치 바로 옆으로 나란하게 형성되어 있는 크랙 코스로서 다양한 형태지만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어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제2피치는 제1피치 끝점에서 언더홀드가 시작되는 지점까지의 구간으로, 문제는 서로 떨어져 있는 제1피치의 끝 부분과 제2피치의 시작점을 어떻게 연결하는가였다.

제3피치는 바로 문제의 언더홀드 코스로서 여러 가지 난제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언더홀드가 끝나는 지점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밑으로 잘하면 발이 닿을 위치에 제법 큰 이끼덩이가 형성되어 있고 그 위에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 사람 하나는 지탱해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따라서 언더홀드 끝부분에서의 마무리는 가능할 듯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언더홀드 시작점에 어떻게 도달해서 어떻게 등반을 시작할 것인가였다.

제4피치는 언더홀드 끝에 있는 이끼덩이에서 박쥐날개 위 서쪽 끝으로 이어지는 거의 직등 구간이지만 바위 면에 굴곡이 형성되어 있고 또한 상당 구간 크랙이 수직선상으로 형성되어 있어 최악의 경우 인공등반으로 오르면 될 것 같았다.

제5피치는 4피치 끝에서 크랙 사이의 빤빤한 페이스로서 가장 난감한 부분이었다.

제6피치는 바로 크랙 코스로서 지난해에 이미 허리길의 3째 마디로 개척된 바 있지만 문제는 옆쪽이 아니라 아래쪽에서 크랙의 하단부로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문제였다. 따라서 총 6개의 피치로 구성되는 전혀 다르고 동떨어진 바위선의 조각들이지만 어떻게 잘하면 연결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더홀드 시작점으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해줄 것 같은 바위 선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1피치 크랙의 최상단부에 하켄을 박고 줄을 걸어 왼쪽으로 진자형 뛰기나 슬랩 등반을 하면 손이 닿을 만한 곳에 조그만 바위 턱이 비스듬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손끝으로 그걸 잡고 몸을 끌어 올리면 비록 비스듬하지만 그래도 그 위에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거기서 위로 언더홀드가 시작되는 곳까지 이어지는 크랙이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게 덮어 쓴 형태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하켄 한두 개를 치면 언더 홀드 시작점까지 레이백이나 크랙 등반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언더홀드 시작점 근처에서 크랙이 짧지만 어깨를 집어넣어야 할 정도의 변형 침니로 바뀌고 조금 위부터 언더홀드가 비스듬하게 위로 10시 내지는 11시 방향으로 곡선을 이루며 뻗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손은 크랙 속에 재밍하고 오른쪽 어깨만을 변형 침니로 끼워 넣고 두 발은 직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몸동작에서 바로 언더홀드 몸동작으로 전환해야만 하는데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불가능한 동작으로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지점에 내 몸 동작의 중립을 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엇이 마련되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잠시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조그만 스탠스만 있으면 될 것 같았다. 밑도 끝도 없는 단순한 나의 기대일 뿐이었으나 이것 말고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다른 대안이 없었다.

기대는 급기야 간절한 갈망으로 변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갑자기 나의 이 갈망이 현실적으로 실현되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바로 그곳, 보기에는 빤빤하기만 한 절벽에 내가 바라는 조그만 스탠스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 것이었다. 마치 허리길 개척 시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장소에서 나타난 그 기적 같은 바위구멍처럼 이번에도 결정적인 바로 그 장소에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갑자기 든 것이었다.

비록 아무런 근거 없는 예감이지만 일단 그것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그곳에 가까이 접근해서 두 눈으로 직접 살펴보는 수밖에 없었다. 바로 모험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었다. 제1피치를 우선 개척해서 그 끝에서 보면 그것을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다음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언더홀드 다음의 제4피치와 제5피치 구간이었다. 과연 슬랩 등반이 가능할 것인가. 보기에는 그저 빤빤한 바위절벽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언더홀드 끝점에서 거의 수직 방향 위로 희미한 크랙이 형성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바위 턱이 있는 것이 햇빛에 의한 그림자로 확인되었다. 최악의 경우 하켄과 볼트를 사용하면 박쥐코스 날개 위 서쪽 끝 부분으로 이어질 것 같았다. 그렇다면 비록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의 개척코스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계획을 실행하는 행동뿐이었다.

결정 그리고 실행 : “Just Do It” 구하라 얻으리라

제1피치 개척. 1966. 5.22.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등


	표범길 초기구상도. 출처 개척 당시 나의 등반노트
▲ 표범길 초기구상도. 출처 개척 당시 나의 등반노트
드디어 표범길 개척의 첫발을 내디뎠다. 첫걸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출발점 덮개 바위에 얇은 리스 하켄 한 개를 박고 사다리를 걸었다. 그런데 하켄을 박기 위해 해머를 내려치는 순간 해머 나무자루가 부러져 밑으로 나뒹굴었다. 그것도 내가 가진 몇 개 안 되는 어렵게 구한 외제 정식 등반장비인데. 이 무슨 불길한 징조란 말인가.

잠시 후 이것이 불길한 징조가 아니라 길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상황이 바위 중간에서 벌어졌다면 얼마나 낭패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다행히 밑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했으니 아무런 위험도 발생하지 않았고 바로 여분의 다른 해머를 사용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리스하켄 한 개를 덮개바위에 역방향으로 설치하고 사다리를 걸었다. 사다리 상단에 올라서니 머리 위의 조그만 구멍홀드에 손이 닿았다. 양손가락을 구멍홀드에 넣어 찢어 벌리는 형태로 잡고 몸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왼손을 뻗어 얇은 역방향 리스를 손가락 끝으로 겨우 잡아 균형을 유지하면서 슬랩 동작으로 서너 스텝 전진해서 위로 뻗은 크랙의 밑부분으로 파고들었다.

첫 번째 난관을 돌파해서 5~6m 위 바위틈에 뿌리박고 있는 나무 위로 올라섰다. 나무는 나의 체중을 충분하게 지탱해 줄 정도로 굵었고 바위틈에 튼튼하게 뿌리를 박고 있었다(표범길 개통 얼마 뒤 이 나무는 뿌리째 뽑혀 없어짐). 거기서부터 위로 쭉 뻗은 크랙은 레이백 등반이 가능한 멋진 등반선이었지만 흙으로 꽉 차 있고, 협소하고 척박한 한줌 흙더미에서도 풀들이 악착스럽게 생명의 뿌리를 빈틈없이 박고 있어 내 손가락을 넣을 틈이 없었다.

따라서 레이백 등반은 불가하고 대신 손과 발을 크랙에 끼워 넣어 재밍으로 고정하면서 후비적거리며 오를 수밖에 없었고, 손과 발을 틈새에 집어넣기 위해 적절한 간격으로 풀들을 뽑아내야 했으며, 손가락으로 흙을 후벼 파내야 했다. 후벼 판 흙들이 크랙에 바짝 붙어 있는 내 얼굴로 쏟아지고 목덜미를 타고 몸속으로까지 쏟아져 들어가 땀과 범벅이 되면서 내 몸뚱이 전체가 마치 흙으로 목욕한 짐승처럼 되어버렸다.

나는 오로지 손에 묻은 흙이 땀과 범벅이 되어 미끈거리는 것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오를 수밖에 없었다. 크랙이 끝날 때쯤에는 내 양손가락의 손톱에서는 피가 흘렀고 아파서 더 이상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확보 하켄 한 개를 설치해서 줄을 걸고 조심스럽게 하강했다.

다음 주말에 우리는 다시 그곳에 섰다. 이번에는 희구가 선등으로 올라갔다. 지난번 진출지점에서부터 위로 2m가량은 손가락 첫 마디만 겨우 들어갈 정도의 얇은 크랙이 왼쪽에 수직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빤빤한 사면이었다. 요즘의 암벽화를 사용하면 변형 레이백이 가능하지만 당시는 군용워커였기 때문에 그런 동작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 수 없이 앵글하켄 한 개를 불안한 대로 설치하고 사다리를 걸어 톱이 재빠르게 올랐다.

그런데 바로 뒤에 내가 오를 때 사다리에 내 체중이 몽땅 걸리는 순간 하켄이 빠져 버렸다. 순간적으로 잠깐 공중에 뜬 채로 떨어지면서 허벅지가 바위에 부딪쳤다. 그때 얻은 상처는 지금까지도 남아 궂은 날에는 가끔 쑤신다.

나는 하켄을 다시 박고 올랐다. 드디어 제1 피치 끝점에 올라 튼튼한 확보 하켄을 한 개 더 설치하고 그것에 줄을 걸고 약간 밑으로 내려서서 언더홀드의 가능성을 보장해 줄 지점에 과연 내 예감대로 스탠스가 형성되어 있는지 타진해 보았다. 줄에 의지한 채로 몸을 최대로 뒤로 젖히면서 고개를 길게 뽑아 쳐다보았다. 내 시선이 그 위치에 맞추어지자 마침 태양빛이 역광으로 눈을 부시게 했다. 역광 속에서 빛나는 무엇을 본 것이다. 순간 깜짝 놀랐다. 온몸에 전율까지 느꼈다. 예상하고 기대했던 스탠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석양 햇빛을 받아 마치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파란 하늘과 바위가 수평선처럼 한 개의 선으로 만나는 바로 그 매끄러운 바위선상에 볼록 튀어나온 형태로 너무나 또렷했다. 마침 오후 햇살이 역광으로 부딪쳐 반사되면서 보석처럼 반짝였다. 내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렇게 갈구했던 것이 바로 그 자리에 바로 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허리길의 구멍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이 벌어진 것이다. 허리길에서의 기적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기대했고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찾아와 준 것이다.

이로써 언더홀드는 나의 예상대로 가능할 것이라는 직감이 왔다. 거기에 서서 확보용 볼트 한 개를 치면 언더홀드를 마음 놓고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등반은 여기서 끝내고 다음에 저 스탠스까지 전진하기로 하고 하강했다.


	1 표범길 스타트. 2 표범길 개척 당시의 필자.
▲ 1 표범길 스타트. 2 표범길 개척 당시의 필자.
도봉산 신령께서 또 하나의 은총 베풀어

제2피치 개척. 1966. 5.29. 크랙 구간. 백인섭, 강길건, 정지혜, 백인상

제1피치 최상단에 박은 하켄에 확보줄을 걸고 시계추 같은 진자 운동을 몇 번 시도한 끝에 제2피치 시작지점의 바위 턱을 잡을 수 있었다. 비록 비스듬하지만 예상대로 서 있을 수 있는 턱이었다. 그곳에서 언더홀드 시작점, 즉 기적의 스탠스까지는 레이백이 가능한 얇은 크랙을 형성하고 있었다. 처음 부분은 손가락 첫 마디조차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좁아서 앵글하켄 두 개를 박아야 했다. 앵글하켄도 속이 막혀서 꼭지 부분만 겨우 박혀 충격을 주지 않는 전진용으로만 사용이 가능했다.

사다리를 걸어 두 스텝 오른 후 레이백 자세로 몸을 완전히 허공에 노출시키고 오르다가 크랙이 넓어지는 지점부터는 손은 물론 발도 크랙 속에 재밍하면서 수평크랙까지 올랐다. 거기서 뚜껑바위 위에 형성되어 있는 수평 크랙에 하켄 하나 박고 확보해서 자세를 바꾸고 변형 침니로 오르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뚜껑 위의 수평크랙이 실은 크랙이 아니라 움푹 파인 자국이었다. 하켄을 박을 수 없었다. 뚜껑바위와 본체 사이의 크랙은 너무 넓어서 내가 가진 앵글하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대로 오르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자세를 바꾸는 동작이 불확실해서 자칫하면 추락할 것이고 더구나 아래에 설치된 하켄들이 나의 추락충격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잠시 황당한 상황에 처해 주저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던 중 그 막힌 수평크랙이 가운데쯤에서 십자 형태로 쏙 들어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머 피크로 때려보니 뚜껑바위에 구멍이 뚫렸다. 뜻밖의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다.

나는 재빠르게 구멍을 넓히고 구멍 속으로 슬링을 집어넣고 왼손을 뚜껑바위 밑으로 깊숙이 집어넣어 슬링을 잡아 밖으로 빼내 고리를 만들었다. 뚜껑 바위에 구멍을 뚫어 마치 소고삐 같은 고리를 만든 것이다. 난생 처음 우연찮게 만들어 본 ‘바위 체인’이었다(한참 후에 똑같은 원리로 빙벽에서 만들어져 사용됨. 소위 ‘아발라코프 체인’). 거기에 카라비너를 걸어 확보하니 완벽한 확보점이 되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자세를 쉽게 바꾸어 전진해서 드디어 그 신기한 스탠스 위에 올라섰다.

스탠스는 기대 이상으로 완벽한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예리하게 각이 진 얇은 밴드 형태이고 이상하게 바위질도 그 부분에서만 철분이 많이 섞여 있어 붉은빛을 내고 있으며 매우 강하고 튼튼했다. 길이도 꽤 길어 두세 명까지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스탠스였다.

도봉산 신령께서는 그것 외에도 뜻밖의 또 한 가지 은총을 베풀어 주셨다. 확보용 볼트를 박아야 할 바로 그곳에 하켄을 박을 수 있는 리스가, 그것도 이상적 각도와 이상적 재질(철분이 많은 바위 성분)로 딱 필요한 만큼 뚜껑바위 속에서 밖으로 나왔다가 도로 들어가는 형태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켄을 박기 위해 해머를 내리치자 쨍 하는 맑은 쇳소리가 도봉은 물론이고 저 멀리 수락산까지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때까지, 그 이후로 들어본 하켄 소리 중 가장 맑고 깨끗한 소리였다. 뚜껑 덮인 바위 안쪽에 형성된 리스가 바로 그 지점에 하켄 한두 개 박을 수 있을 정도로만 절묘하게 살짝 밖으로 돌출됐다가는 다시 속으로 들어가 버린 크랙, 3~4cm만 덜 나왔어도 뚜껑에 걸려 해머 질이 불가능할 뻔했는데. 정말 절묘한 설계였다. 이것도 도봉산 산신령이 몇 백만 년 전에 선인봉을 만드실 때 지금의 나를 위해 자로 재서 딱 필요한 만큼만 쓸 수 있도록 밖으로 뽑아 놓은 것 같았다.

나는 하켄 한 개를 더 설치했다. 이로써 언더홀드를 공략할 수 있는 출발기지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전진 중의 어떠한 추락도 안전하게 잡아 줄 그런 완전한 기지가 마련 된 것이었다. 문제는 다만 줄의 장력일 뿐이었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요델 소리가 도봉계곡을 타고 골마다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세컨드(강길건)가 올라왔고 나는 그의 믿음직한 빌레이에 안심하고 다시 전진할 수 있었다. 슬랩으로 두세 스텝 오르니 드디어 언더홀드가 시작됐다. 언더홀드를 잡아 보니 예상대로 끝이 날카로워 손으로 잡기가 아주 좋은 상태였다. 박쥐코스의 언더홀드와 거의 동일한 형상이었다. 다만 수평이 아니라 10시에서 11시 방향으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뻗어 오른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그리고 중간 부분에서 홀드선이 급해지는 부분이 있어 발이 미끄러져 홀드를 놓치면서 추락할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직전에 마침 홀드가 주걱처럼 불거진 부분이 있었다. 거기에 슬링을 잡어 매고 카라비너를 걸면 아주 훌륭한 확보물이 될 듯싶었다.

전진을 감행했지만 곧바로 예상외의 난관에 부딪쳤다. 주걱처럼 불쑥 불거진 부분이 너무 얇았고 더구나 바위가 삭아서 흔들거렸다. 그것을 잡고 나의 온 체중이 걸리면 구들장만 한 크기로 바위가 떨어져 나갈 것이고 그리 되면 나는 그것을 껴안고 뒤로 자빠져 떨어질 것이다. 설사 요행으로 그것이 부서지지 않는다 해도 언더홀드 끝 부분에서 작은 나무가 있는 확보점으로 건너서기가 여의치 못하면 그대로 어마어마한 자유낙하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도저히 그냥은 전진할 수 없었다. 전진하면서 중간에 한 두 개의 확보점을 마련해야 하는데 바위 틈새가 너무 넓어서 하켄을 박을 수 없고 그렇다고 내가 가진 비상무기인 볼트하켄을 박을 수도 없다. 볼트를 박으려면 그 지점까지 연속적으로 볼트를 박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격을 일단 멈추고 하강하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일한 대안은 소문으로만 듣던 대형 봉봉하켄이었다. 당시 들리는 소문으로 고대 산악부 OB인 장영환 선배가 대형 두랄루민 봉봉하켄을 몇 개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든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마침 그 선배와 가까운 서울공대 산악부 대장 홍종만이 내가 좋아하는 후배(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 공과대학)라서 그를 통해서 그것을 빌려보기로 작정했다.


	언더홀드 구간 개척(홍종만, 백인섭).
▲ 언더홀드 구간 개척(홍종만, 백인섭).
대자연은 항상 문제 속에 답을 숨겨 놓았다

제3피치 개척. 1966. 7.3. 언더홀드 구간. 백인섭, 강길건, 홍종만, 오준보

1966년 7월 3일, 드디어 말로만 듣던 봉봉하켄 세트를 빌려온 홍종만이 우리와 합세했다. 2피치 구간은 박쥐 똥으로 지저분했고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기로 3주간 빼먹는 동안에 이렇게 변한 것이었다. 찍찍거리는 박쥐들의 전파 발사 소리를 들으며 박쥐 똥을 손으로 헤치고 털어내면서 언더홀드 시작점까지 올랐다.

거기서 종만에게 선등을 해보겠느냐고 물으니 그가 선뜻 나섰다. 그가 귀한 봉봉하켄을 빌려온 것이 고마워서 예의상 물어본 건데. 하여간 그는 당시 아주 뛰어난 클라이밍 실력의 보유자였기에 주저 없이 선등을 맡기고 대신 나는 확보에 만전을 기했다. 굉장한 추락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문제의 약한 언더홀드 전후에 봉봉하켄 두 개를 설치하고 언더홀드의 나머지 부분을 주저 없이 끝내고 이끼 둥지 위로 올라섰다. 당시에는 다행히 흔들리는 주걱 부분이 깨어져 떨어지지 않았지만 얼마 후에 깨어져 떨어져 나갔다. 드디어 언더홀드 구간이 돌파된 것이다.

확보하켄을 설치해서 선등자가 자기 확보를 한 후 내가 바로 전진했다. 언더홀드 끝 부분에 도착해서 나는 또 하나의 기적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했다. 전혀 예상 밖의 신기한 일이었다. 언더홀드 끝부분에 마무리를 하라고 반대 방향으로 마련되어 있는 기막힌 홀드가 바로 그것이었다. 두 손으로 잡고 매달릴 수 있을 정도의 길이였다. 바로 그 덕분에 언더홀드 끝 지점에서 선등자가 언더홀드 자세에서 매달리는 자세로 무난하게 자세를 바꾸면서 나무 둥지로 내려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신기하게도 불연속선이 끝나는 지점에는 항상 무엇인가 어떤 형태로든 돌파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치 산신령의 사랑스러운 손길처럼. 대자연은 이렇게 항상 문제 속에 답을 숨겨 놓았다.




 선인봉 표범길 개척 (하)]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대 사건이었다     
박쥐 테라스 상단벽에 2단 개척으로 전 코스 완성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제4피치 개척> 리스 구간 

1966년 7월 3일 : 백인섭, 강길건, 홍종만 등


	표범길 등반. 1피치에서 2피치로 접근하고 있다.
▲ 표범길 등반. 1피치에서 2피치로 접근하고 있다.
제4피치도 당초 예상보다는 양호한 상태였다. 바위 면에 굴곡들이 적당하게 형성되어 있었고, 크랙의 조각들이 충분히 깊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형성되어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내가 다시 선등하고 종만이가 세컨드를 보도록 했다. 리스 상태가 좋지 않아 몇 개의 리스하켄을 설치하면서 크랙 끝 지점까지 올랐다.

거기서는 장시간 볼트 설치작업을 하기 위해 확보용 하켄을 설치해야 했다. 마침 짧은 구간이지만 내가 가진 앵글하켄을 박을 수 있을 정도의 크랙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크랙도 속이 막혀 있어 앵글이 반도 박히지 않아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위에 한 개를 더 박고 불안한 대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볼트 작업을 시작했다.

한 20분 작업을 했을 때 사다리를 걸고 서 있는 앵글하켄이 밑으로 쑥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막힌 크랙 속에 반도 못 박힌 하켄이 내 몸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래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놀란 나는 재빨리 구멍 파는 작업을 정리하고 드릴을 뽑아냈다. 나는 드릴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가느다란 보조 줄로 드릴을 묶고 고리를 만들어 왼손 가운데 손가락에 끼고 작업하던 중이었다. 한데 갑자기 하켄이 빠져 내 몸이 떨어지면 구멍에 박혀 있는 드릴에 보조 줄로 매여 있는 내 손가락에 나의 온 체중이 매달릴 것이고, 그리 되면 내 손가락이 내 손에서 뽑혀나가 드릴에 매달리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잽싸게 빼낸 드릴과 해머를 색에 넣는 순간 하켄이 빠지면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주렁주렁 매달린 하켄, 해머, 사다리 등의 쇠붙이들이 바위에 부딪치면서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어찌된 영문인지 바로 밑에 하켄이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슬립은 멈추지 않고 순식간에 10여 m 밑에 있는 세컨드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상해서 고개를 돌려 세컨드를 보았다. 경악했다. 장시간 내 확보를 보던 세컨드가 지루한 나머지 확보 줄을 놓은 채 반대쪽 수락산에 한눈을 팔고 있던 중이었다. 순간 내 입에서는 쌍욕이 터져 나왔다. 평생 처음으로 그에게 쌍말 욕을 한 것이다.

“야 새끼야, 앙카!”

그 소리에 놀라 그가 황급히 줄을 잡았지만 제동이 될 리 없었다. 나의 슬립은 한참동안 더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에 항아리처럼 움푹 파인 곳으로 들어가면서 덜컹하고 멈췄다. 바위 사면이 급해지기 직전에 약간 불룩해지면서 수직으로 얕은 골을 형성하고 그 골 사이에 마치 불룩한 배의 배꼽처럼 파여 있는 바위 홈이었다. <참조 표범길 전경사진-주5>

몸의 균형을 유지한 채 두 발을 사면에 마찰시키면서 슬립했기에 움푹 파인 곳에서 내 두 발바닥 마찰력으로 제동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표범길 개척 당시 최대의 슬립이 선인 전면벽 한복판에서 20여 m에 걸쳐 벌어진 것이다. 아래 샘터에서 나의 개척을 주시하던 구경꾼들에게는 볼 만한 추락장면이 연출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손바닥과 팔꿈치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을 뿐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

다시 올라서 하켄을 박고 볼트 작업을 마무리 지은 다음 그 위에 다시 볼트 한 개를 더 설치했다. 이렇게 해서 제4피치는 볼트하켄 두 개에 의해 드디어 박쥐코스 언더홀드 위로는 이어진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찔한 사건이었다. 그때 만약 배꼽처럼 움푹 파인 바위에서 내 스스로 제동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거기서부터는 경사가 거의 수직상태로 되어 슬립이 아닌 자유낙하 추락이 벌어졌을 것이고, 줄 끝까지 떨어진 후 세컨드가 확보하고 있던 하켄에 모든 충격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리되면 그 하켄이 빠졌든지 아니면 줄이 끊어져 버렸을 것이고, 톱인 나는 물론 자일 파티 전체가 추락사하는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이제 돌이켜 보니 선인봉 신령께서 나를 다시 한 번 살려준 것이다. 허리길에서는 오도 가도 못하는 추락 직전의 상황에 처한 나를 조그만 바위구멍으로 구해 주었고, 표범길에서는 20여 m를 슬립하는 나를 자신의 배꼽으로 받아 살려 주신 것이다. 이때도 물론 내가 슬립하는 동안 내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바닥으로 바위 면을 미끄러져 내린 덕에 움푹 파인 곳에서 제동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나의 능력이었지만 그러나 그 움푹 파인 선인의 배꼽이 바로 나의 긴 추락선상에 놓여 있었던 것은 전혀 나의 생각도 의지도 아니었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태초에 선인이 만들었을 때 그렇게 설계했던 것이다. 도봉산 산신령님이 또 한 번 따뜻한 사랑의 손을 내밀어 추락하는 나를 받아 준 것이었다. 


	제5피치 중간 밴드에 확보볼트를 설치하고 다시 오르는 필자.
▲ 제5피치 중간 밴드에 확보볼트를 설치하고 다시 오르는 필자.
도봉산 산신령이 따뜻한 사랑의 손으로 추락 막아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바라던 것은 박쥐코스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길로 제6피치 크랙 밑으로 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4피치의 마지막 볼트지점에서 11시 방향으로 올라야 한다. 그런데 사면이 거의 수직경사이고 매끄러워 손과 발을 비벼댈 여지가 없었다. 유일한 대안은 볼트를 10여 개 연속으로 박으면서 크랙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등반관에 전혀 맞지 않았다. 그런 것은 단순 노동행위일 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최대한 바위 상태의 이점과 줄을 이용하는 역학의 최대 활용으로 볼트 3개 이내로 크랙에 접근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그런 신념으로 가능한 등반선을 모색하던 중 문득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바로 4피치 마지막 볼트에서 11시 방향이 아니라 9시 방향으로 몇 미터 건너편 약간 위에 수평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바위 턱이었다. 그 바위 턱 끝에서 크랙 하단부까지 슬랩 등반이 가능해 보이는 울퉁불퉁한 면이 포물선 형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그 바위 턱 밴드를 활용하면 목표지점까지 직등하는 인공적 등반선이 아니라 옆으로 돌아서 우회하는 좀더 멋진 자유등반선이 될 것 같았다.

문제는 어떻게 그 턱으로 올라서는 가였다. 그 턱에 올라설 수만 있다면 바로 중간거점이 마련되어 문제의 반을 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에는 어려운 암벽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손의 땀 때문이었다. 손에 땀이 나면 손끝이 미끈미끈해져 까다로운 홀드를 잡을 수 없고 손바닥을 바위에 비빌 때 미끄러지기 때문이었다(당시에는 요즘 암벽등반에서 필수품인 초크가루 같은 것이 없었다).

그해 여름을 그냥 보내고 가을이 황금빛으로 산봉우리에서 밑으로 쏟아져 내려와 온 산을 뒤덮을 무렵 다시 개척에 몰두했다. 바위 상태를 세밀히 살피고 내 지력을 총동원하면서 여러 차례 진자형 슬랩 등반을 시도했지만 건너편 턱진 곳으로 다가설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산봉우리에는 겨울이 내려앉았다. 온 대지가 하얗게 빛날 때 나는 저 아름다운 선인봉 전면 바위벽에 그리다가 중단한 선들을 보면서 돌아올 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바위의 체온도 떨어지면서 손발이 바위에 붙지를 않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과연 거기에 슬랩 등반선을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몰두했다. 슬랩의 가능성 판단은 바로 코앞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거리에서 어떻게 그것을 판단한단 말인가.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다가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바로 천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눈 내린 직후 관찰하는 것이었다. 습설이 아니고 바람이 없어야 하고 충분히 많은 양의 눈이 내린 직후 바위 사면을 관찰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눈이 바위에 묻어 쌓여 있다면 그것은 그 부분이 완만한 경사이며 거기에는 사람도 설 수 있다는 걸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그해 겨울 어떤 날 바라던 상태의 눈이 내렸다. 나는 선인 전면 샘터에서 그 부분을 살폈다. 내가 등로로 택하고 싶었던 바로 그 사면에 하얀 눈이 낙엽처럼, 아니 발자국처럼 여기저기 적당한 간격으로 묻어 있었고 그것은 볼트에서 3m 정도 밑에서 시작되어 왼쪽 바위 턱 밑으로 이어졌고 바위 턱 위에서는 다시 왼쪽에서 포물선 형태로 크랙 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가을 내가 시도했던 등반선과는 사뭇 달랐지만 잘 골라 디디면 슬랩 등반이 가능하다 싶었다. 이로서 완전히 독립된 제5피치의 가능성도 확인된 것이었다.

다음해 봄 나는 완전히 독립된 제5피치 슬랩 코스 개척을 다시 시작했다. 지난 겨울에 확인해 둔 등반선으로 몇 차례 시도 끝에 드디어 진자형 슬랩으로 중간 턱진 밴드에 올라설 수 있었다. 밴드는 여러 명이 한 줄로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밴드의 왼쪽 끝부분에 확보용 볼트 한 개를 완벽하게 설치한 후 지난 겨울에 확인해 두었던 포물선 형태의 슬랩 등반선을 따라 슬랩으로 오를 수 있었다.

슬랩 선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면 경사가 수직으로 변하면서 1.5m쯤 위에서 다시 슬랩 가능한 사면으로 이어졌다. 나는 손바닥 누르기 기술로 내 몸을 끌어올려 지난해 개척한 허리길 볼트까지 슬랩으로 올랐다. 거기에 줄을 걸고 다시 내려와서 진자형 슬랩으로 크랙 후미로 파고들었다. 크랙 구간은 이미 허리길에서 개척된 터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로서 대망의 표범길 제1단이 완성된 것이다.


	1965년 동계 지리산 등반 중 조상규(별명 표범)와 백인섭(우측).
▲ 1965년 동계 지리산 등반 중 조상규(별명 표범)와 백인섭(우측).
표범처럼 날쎄게 뛰어라

<표범길 2단 개척>

1967년 5월 7일 : 백인섭, 강길건, 백인상 등

다음은 표범길 2단, 즉 선인봉 전면벽 상단부(테라스 위쪽 부분)에서 정상에 이르는 독자적인 길을 만들어 잇는 것이다. 테라스에서 선인봉 정상으로 오르려면 기존의 박쥐코스 변형침니 코스와 직상크랙 코스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어떤 틈새도 없고 경사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재미없는 볼트 벽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볼트벽에 의한 인공등반은 나의 등반관에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2단의 최하단 부분은 생략하고 중간쯤에서 슬랩으로 횡단하든지 아니면 슬랩으로 직상하는 형태로 개척하기로 마음먹고 산 밑에서 선인봉 전면 상단부를 열심히 관찰하면서 루트 찾았다.

드디어 상단부 중간쯤에서 수평으로 슬랩 트래버스가 가능해 보이는 밴드를 찾아냈다. 선인 전면 상단부를 중간쯤 높이에서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또 다른 허리길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마침 왼쪽 끝부분이 테라스에서 십자로로 이어지는 깊은 침니의 끝 부분이었다. 일단 십자로 방향의 긴 침니 끝까지 올라 왼쪽으로 돌출되어 있는 바위봉 꼭지에 올라섰다. 내 앞으로는 침니가 마치 크레바스처럼 깊게 펼쳐져 있고 바로 건너편에 선인 전면벽의 서쪽 모서리가 거의 직각으로 꺾이면서 위 아래로 펼쳐졌다.

문제는 거기서 어떻게 전면벽으로 올라타는가였다. 허리길 개척 당시 선인봉 서측면에서 진자형 슬랩으로 전면으로 올라타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나는 건너편 벽 아래 위를 세밀히 살펴본 후 진자형 뛰기로 건너뛸 만한 곳을 드디어 찾아냈다. 건너뛰어야 하는 폭의 길이로 볼 때 진자의 길이가 최소 4m 정도는 되어야 했다. 따라서 두 발을 넓게 벌려 침니의 양쪽 면을 딛고 선 자세로 최대한 높은 지점에 어렵게 볼트 한 개를 설치해야 했다. 그리고 자일을 걸고 건너뛸 지점까지 하강해서 줄에 의존하면서 정말 표범처럼 잽싸게 진자운동으로 뛰어 전면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눌러 잡으면서 꺾고 올라 드디어 전면벽으로 올라 설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조금 위부터 슬랩 동작으로 선인전면 상부를 완전하게 횡단할 수 있도록 밴드가 수평으로 길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건 태초에 선인바위가 생성될 때 어떤 이유로든 아주 단단한 이물질이 섞여 흡사 나이테처럼 굳어 버린 일종의 바위 띠였다. 그리고 몇 백만 년 후에 바로 그 밴드가 내게 길이 되어주는 찰나였다. 단 한 개의 볼트로 단 한 번의 진자형 점프로 보이지 않는 바로 그 지점으로 정확하게 올라선 것이었다. 내 예측의 정확성에 나도 놀랐다.

문제는 긴 횡단 시 만약의 사태에 대한 나의 확보점 위치였다. 확보볼트가 전면이 아니라 측면에 박혀 있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런데 마침 우측으로 조금 위에 그 수평 밴드가 시작되는 곳에 바위가 엄지손가락처럼 불거져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시 한 번 대자연의 자비를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내 확보 줄을 걸고 여유 있게 전진할 수 있었다. 따라서 별 어려움 없이 자일 한 개 길이를 횡단해서 정상 계곡 하단부(박쥐코스 상단부의 긴 변형침니 크랙이 끝나는 지점)로 진입했다. 이로서 대망의 표범길이 2년의 각고 끝에 완성된 것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길이 될 여지가 전혀 없는 선인의 전면 벽 한가운데에 그 누구도 등로로는 불가능하게 본 바위선들을 교묘하게 엮어서 또 한 개의 멋진 길을 열어 낸 것이었다. 그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대 사건이었다.

‘잃어버린 악우’ 조상구의 별명 따서 ‘표범길’이라 명명

그 무렵 우리에게 예기치 못한 슬픈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전해에 ROTC로 입대해서 전방에서 근무하던 우리의 악우 조상규<별명 모구리(표범)>가 사격훈련장에서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한 달 전 휴가 때도 표범길 개척에서 같이 포효했던 그, 날아오는 총알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날렵한 그, 저보다 목 하나는 더 큰 덩치들에게도 조그만 놈들이 까분다고 호령할 정도로 담이 큰 그, 남쪽 나라 어느 시골에서 태어나 고려대 장학생까지 된 그, 자기는 속세에 찌들어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서 산에 미쳐 다니는 것이고 날 보고는 원래의 나를 속세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 산에 미쳐 다니는 것이라고 갈파했던 그-. 그런 그가 험한 산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치열한 전장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평화 시의 군대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놀란 우리가 소식을 듣고 달려간 곳은 바로 동작동 국립묘지. 우리가 본 것은 조그만 돌비석 한 개 그 위에 새겨진 이름 조상규 소위. 그걸 보고 우리는 그가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지만 믿을 수 없었다.

나는 그를 영원히 우리 가슴에 새기기 위해 새로 개척한 길을 그의 별명을 따서 ‘표범길’이라 명명하고 그의 영전에 바쳤다. 그리고 그를 영원히 마음속에 깊게 묻었다. 지금도 도봉산에 가면 어디에선가 그가 표범 같은 모습으로 불쑥 나타날 것만 같고 그가 포효하는 소리가 저 높은 곳에서 봉우리로 내려와 계곡을 타고 들려오는 것만 같다.

지난 연말에 요델의 강구영 회장한테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얘기인 즉 작년 여름 어느 날 친구와 더불어 표범길 1단을 오른 후 오랜만에 표범길 2단까지 해보려 침니길로 들어서 후비작대며 올라가던 중이었다. 중간쯤에 도달했을 때 별안간 하늘에 매 한 쌍이 나타나서 그들 머리 주변을 끽끽거리면서 맴돌더니 그래도 올라가니까 급기야는 그들의 머리통을 향해서 미사일처럼 날아들며 공격을 감행하더란다. 헬멧을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큰일 날 뻔했다는 걸 직감하고 바로 등반을 포기하고 부랴부랴 도로 침니길을 내려와서 하산했단다. 아주 혼쭐이 났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얘기란 말인가? 표범길 2단을 하려면 별도의 등반허가를 하늘에서 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사나운 매의 공격을 받게 된단 말인가? 그렇다면 혹시 요델의 망자 중 누군가가 매로 환생해서 표범길 2단을 지키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허나 사실은 표범길 1단에서 2단으로 오르는 긴 침니 속에 매 한 쌍이 둥지를 틀었고 거기에 어린 새끼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니 새끼를 보호하려 결사적으로 침입자를 공격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건 또 무슨 얘기가 되는가? 이는 요즘에는 그리로 등반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한다. 반면에 요즘 선인 전면 하단부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북적여 어디든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다.

그런데 신기한 건 상단부에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들 하단부에서만 스포츠클라이밍 적 등반만을 즐기고 중간에서 하산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인 하단 부 덮개바위 속에 살던 박쥐 떼는 집을 잃고 사라진 지 오래고, 대신 상단부에는 예전의 토속 매가 둥지를 틀게 된 것이다.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여전히 봉우리를 지향하는 예전의 토속 등반가들은 매처럼 날개가 없으니 하단부에서 들끓는 사람들에 길이 막혀서 오르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 다소 안타까울 뿐이다.


	도봉산 표범길 개척등반
도봉산 표범길 개척등반

위치 도봉산 선인봉 전면  개척일시 1966년 5월 22일~1967년 5월 7일

개척자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홍종만, 이희구 등

주1   2피치 시작점(얇은 바위턱) 주2  기적의 스탠스(언더홀드 시작점)

주3  이끼덩이 위에 작은 나무 한 그루(언더홀드 마무리 지점)  주4  덮개바위에 뚫은 구멍(슬링을 집어넣어 바위체인 설치)

주5  당시 나의 대 추락을 잡아준 선인의 배꼽(움푹 패인 바위) 주6  3m 정도 수평으로 형성되어 있는 바위 턱(5피치 중간거점) 

필자소개 산악인(요델산악회)

학력경력 서울 출생, 경복고, 서울대 공대(전기공학), 한국과학기술연구소(선임연구원), 카이스트(전산학 석사), 프랑스 IMAG(전산학 박사), 데이콤(초대연구소장), 아주대 정보통신대(교수).

등반경력 개척초등 등반(도봉산 : 양지길, 허리길, 표범길 등. 설악산 : 범봉, 석주길, 칠형제봉, 자즌바위골 등)

등반외 취미활동 스키, 테니스, 윈드서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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